_IMG_2995
석굴암 앞에 놓인 인왕산 안내도 / _IMG_299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안내문 보기


옥인아파트가 있던 자리의 수성동 계곡을 향해 가다보면 마을버스 종점 직전에 옥인제일교회가 나타난다. 가던 길을 따라 곧게 오르면 수성동 계곡을 거쳐 북악스카이웨이에 오르지만 오른편 경사로 방향을 틀면 불국사(佛國寺)가 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대나무 밭이 인상적인 사찰인데, 인왕산 석굴암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경주를 떠올리기 마련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인왕산에 함께 자리잡고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면 북악스카이웨이 중간에 있는 경비초소 앞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인왕산 정상을 포기하고 왼편 길을 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석굴암 약수터'가 나온다. 북악스카이웨이 윗쪽으로 만수천, 인왕천과 함께 수성동 계곡의 상류를 이루는 약수터 중 하나이다.


석굴암 약수터에서 가파른 계단 300여개를 10분 남짓 오르면 계단 끝으로 석굴암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거대한 바위가 얹혀있고, 그 바위 아랫틈으로 문이 나있는 것을 보면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바위틈의 암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싶다.


_IMG_3007
바위 아래 콘크리트로 벽을 막아 입구를 낸 석굴암 / _IMG_3007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한자로 적힌 석굴암이라는 이름을 보고 새삼 뜻을 풀어보니 '바위굴 암자'라는 의미이다. 고유명사 보다는 일반명사 처럼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을 해보니 석굴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는 경주 토함산은 물론, 양주 오봉산(북한산), 서울 도봉산, 제주 한라산에도 있었다.


주 출입구 반대편으로도 작은 출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이 곳을 보면 인왕산 큰 바위들이 굴러 깨진 틈새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의 모양이 그대로 읽힌다.


_IMG_3011
석굴암 뒷문 / _IMG_301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사진을 찍던 날은 그 며칠 전 신교동 골목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새벽에 인왕산 석굴암에 가서 산꿩을 여러번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산꿩을 만날까 나름 이른 시각에 올라본 것인데, 너무 늦은 탓인지 그 날은 산꿩이 내려오지 않은 탓인지 아쉽게도 산꿩을 보지는 못했다.


올라간 김에 이리저리 석굴암 주변을 돌아보다가 앞마당 철봉 옆의 길을 보고 접어들었다. 길이 작은 능선을 돌아굽더니 커다란 바위 틈 아래로 난 세모굴 너머로 물이 고여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_IMG_3030
천향암 / _IMG_3030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천향암(天香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하늘천('天')의 첫 획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이채로왔다.


물은 머리위 큰 바위를 타고 내려와 바위 끝으로 떨어져 바위 웅덩이에 고였다가 골짜기를 타고 흘러갔다. 촛불기도를 금하는 안내문 뒤로 팽개쳐진 경고문이 이 곳을 '석굴암약수터2'라고 불렀고, 수질은 그다지 좋은 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_IMG_3034
방치된 약수터 폐쇄 안내문 / _IMG_303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안내문 보기


물이 떨어지는 바위는 바위끝 뿐만 아니라 그 아랫쪽으로도 습기가 가득하여 볕이 들지 않는 곳은 이끼가 가득끼어 있었다. 바위 전체를 타고 물이 나오는 듯 하다.


_IMG_3045
천향암 바위 이끼 / _IMG_304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세상을 피해 석굴암에 숨어든 이야기가 몇 전하는데, 아마도 이 곳이 그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어느 서촌 토박이분으로부터 일제를 피해 명성황후가 몸을 숨긴 곳이 석굴암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의 발길은 잦았던 것 같다.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 유명세를 탄 탓일수도 있겠다. 천향암에서 나오는 길에 입구 바위 안쪽으로 새겨진 바위글씨와 그림이 눈에 띠었다.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려진 산의 윤곽인 듯 했다.


_IMG_3051
천향암 입구 바위 안쪽의 바위그림 / _IMG_305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숫자는 4283년 5월을 뜻하는 듯 했다. 단기 4283년이라면 서기로 1950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것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바위를 쪼아 새긴 글씨는 제법 흔한 것이어서 예전에는 무분별한 자연훼손이라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 이렇게 눈에 띤 것이 60년 전 낙서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나름대로 질박하게 드러나는 옛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_IMG_3054
천향암 입구에 걸린 시 / _IMG_305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돌아나오는 길에 암벽 틈으로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미년(辛未年)이라면 1991년으로 20년 전에 불과하지만, 인왕산 등산로가 일반에 개방된 것이 1993년이니 그 때만 해도 이 곳 천향암은 말그대로 고적한 은처였으리라. 가슴을 치는 명문은 아니어도 인왕산이라는 제목으로 7·5조의 시를 짓고 걸어둔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인왕산


새벽공기한아름 가슴에안고

오백계단하나둘 약수터갈제

힘겨운맥박소리 구슬땀빚어

신성한천향수에 갈증을푸니

건강에비결일세 천약수라네


천향암옆을돌아 인왕을보니

절묘한암석들은 만물상인데

유순한인왕봉은 현모양처요

만상이신비스런 인왕산절경

경관이수려하여 명산이라네


석굴암독경소리 새벽이오면

경건한삼신불에 자애자비를

영험한삼신전에 속죄를빌며

저승의극락왕생 축원을하고

이승에만사형통 기원할거나


신미년 유월 이영원(李永元)


어제 아침에 산꿩 보러 석굴암에 올랐다가 천향암만 보고 내려오는 길에 수성동 계곡 접어들며 까치 한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주변을 이리 저리 살피며 걷는 모양이 짙푸른 도포에 뒷짐지고 아침 산책 나선 영감같아 재밌다고 쫓아가며 찍는데 뒤는 내내 신경도 안쓰다가 맞은 편으로 북악스카이웨이 산책객을 보고는 후다닥 날아오른다.














지난 7월 11일, 수성동 계곡 복원 준공식이 열렸다. 취재 카메라는 곳곳에서 돌아가고 현장을 소개하는 기자들은 바윗돌 사이를 겅중거리며 뛰어다녔다. 준공식을 앞둔 계곡 입구에는 의자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_IMG_0471
수성동 계곡 준공식 현장을 취재중인 KBS 카메라 / _IMG_047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수성동 계곡은 물 흐르는 소리가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어느 위치에 어떤 모습인지는 전혀 확인된 바 없다. 다만 겸재 정선이 당시 '장동'이라 불리던 서촌 일대의 풍경을 그린 장동팔경첩 중 일경이 기린교가 놓인 수성동 계곡을 배경으로 한 까닭에 그 옛모습을 되짚어볼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은 수성동계곡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처음 옥인아파트 철거계획이 나올 당시에는 수성동 계곡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서울 용강·옥인동 시범아파트 철거 (뉴시스, 2007년 12월 7일)


옥인아파트 철거가 결정된 것은 지금 '윤동주 시인의 언덕' 자리에 있던 청운아파트가 철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서울시는 1997년에 '시민아파트 정리계획'을, 2002년에 '노후 시민아파트 정리 특별대책'을 수립하는데, 옥인아파트는 그 다음 순서로 추진된 오세훈 서울시장의 르네상스 사업 중 내사산르네상스의 일환으로 철거가 결정된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에 이어 청계천 상류를 복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도 고려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재미있는 것은 보도에도 나와있듯 노후한 건물 탓에 철거됐던 청운아파트와는 달리 옥인아파트는 인왕산 녹지의 일부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 철거의 주된 이유였다. 역시 어디에서도 수성동 계곡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인왕산 도시자연공원 추진이 전환을 맞게 된 것은 기린교의 발견이었다. 철거 계획이 나온지 2년이 다 되어가던 가을에 갑자기 옥인 아파트 옆 계곡에서 조선시대 돌다리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 돌다리 발견 (연합뉴스, 2009년 9월 14일)


보도 사진에서 보다 시피 다리 위로 시멘트가 덮이고 양 옆으로는 철제 난간이 박혀진 채 40년 가까이 잊혀져 있던 기린교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다리는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그림에 그려진 모양과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고, 다음 해에 수성동 계곡을 복원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 하지만, 기린교임을 명백히 확인시켜주는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재에도 기린교의 공식 명칭은 '돌다리'에 머물고 있다.)


옥인아파트 40년만에 철거, 수성동 계곡 살린다 (매일경제, 2010년 9월 15일)


촛점은 인왕산 녹지를 침범하고 있는 옥인아파트가 아니라, 수성동 계곡을 가리고 있는 옥인아파트로 옮겨갔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수성동 계곡과 돌다리를 서울시기념물로 지정하는데, 수성동 계곡은 서울시 기념물 중 최초의 자연물이라는 기록을 얻게 된다. 그렇게 공원 조성사업은 문화재 복원사업으로 방향을 틀게 되고 공원과 문화재라는 다소 낯설은 조합 안에서 크고 작은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서울 사람이라도 인왕산과 북악산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도 흔하고 청와대 뒷배경으로 우뚝 선 북악산도 화면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세종로에 서면 북악만 보일 뿐 인왕을 보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인왕이 숨겨진 산이 되어버린 데에는 광화문 바로 앞에 말의 눈가리개처럼 세워놓은 정부종합청사 건물도 톡톡히 한 몫 하고 있다.


지난 달 수성동 계곡이 복원사업을 마치고 일반에 개방되었으니 이 계곡을 오가며 인왕의 능선을 눈에 익힐 기회는 늘어난 셈이니 인왕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낯익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_IMG_0478
수성동 계곡 기린교 앞에서 바라본 인왕산 / _IMG_0478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수성동 계곡에서 올려다 본 모습에서는 인왕산 중에서도 정상을 이루고 있는 치마바위가 시야를 채우는데, 치마바위 바로 북쪽 골짜기는 너무나 가파라 치마바위 발치에 있는 석굴암에서 길이 끊긴다. 석굴암 오르는 길 바로 다음 계곡으로 만수천을 지나 북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이르는 길이 있는데, 서촌에서 인왕을 오르기에는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등산로가 된다.


다른 동네에서 등산 오는 분들은 등산복에 장비까지 채비를 잘 갖추고 오기도 하지만, 말하자면 서촌의 동네 뒷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왕산은 마음 내키면 샌들 신고 올라가도 충분한 산이다. 하지만 그 가파른 산길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_IMG_2577
인왕산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곽길 / _IMG_2577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 사진 가운데 부분을 가로지르며 내려가는 짙은 골짜기가 인왕천이 있는 등산로이다.


지난 주말에는 만수천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성곽을 따라 사직단으로 내려오는 길 중간에서 왼쪽으로 길을 틀어 인왕천을 따라 내려와봤다. 만수천으로 오르는 길도 가파르다 했지만 인왕천 길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인왕천과 만수천 모두 수성동 계곡으로 흘러들지만 인왕천은 말 그대로 인왕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풍경도 바로 곁에 있는 다른 골짜기와 사뭇 다른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린 바위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기도 하고, 가파른 골짜기 따라 비좁게 나있는 돌계단길도 인왕산 자연암을 깎아 계단으로 만든 구간이 훨씬 길게 분포한다.



_IMG_2584
인왕천 골짜기에서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바위 / _IMG_258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에 들어 붙여진 이름인데, 인왕사라는 절이 있다고 해서 인왕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 전에는 '서봉(西峰)' 혹은 '서산(西山)'이라 불리웠다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이 사직단 자리를 정하는 부분에서 인왕산을 서봉이라고 언급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인왕산의 한자 표기는 仁王山 으로 주로 쓰이는데, 일제 시대에 가운데 임금 왕('王') 자를 일본의 왕을 뜻하는 성할 왕('旺')으로 조작하였다 하여 성할 왕을 피해 仁王山 이라는 표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비록 한 번에 불과하지만 인왕산을 표기할 때에 성할 왕을 사용한 적이 있으니 딱히 일제의 조작에 의해서 성할 왕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인 듯 싶기도 하다.



_IMG_2585
인왕천 약수터 옆에 새겨져 있는 바위 글자 / _IMG_258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하지만 해방 이후 극일감정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인왕천 옆에 새겨진 바위 글씨를 보면 가운데의 성할 왕 자의 날일 변이 지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좌우 살필 것 없이 일제의 흔적이라면 없애버리고 싶었던 감정도 부당하다 할 것은 아니지만, 전후를 살피고 정확한 근거에 따라 판단하고 보전 여부를 결정하는 냉철함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인왕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경사 탓에 딛고 내려갈 바위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하나씩 바위를 밟고 내려가던 도중 재미있는 돌 하나를 발견했는데, 계단석 중 하나로 쓰이고 있는 돌에 글씨가 새겨진 흔적이 눈에 띤 것이다.


_IMG_2581_ep
인왕천 골짜기의 계단석 중 하나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 _IMG_2581_ep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사진으로 바위를 촬영할 때에는 왕대곤('王大坤')으로 읽었는데, 이미지를 살펴보면 첫 글자가 모호하다.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깨서 계단으로 놓은 것인지, 글씨를 새기다 잘못된 것을 계단으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호기심에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앞 글자를 성씨 김('金')이라 가정하여 인물을 찾아봤더니 순조(19세기 초) 때에 홍문관(弘文館)을 한 인물이 한 명 검색된다.


김대곤(金大坤), 본관은 서흥으로 순조 16년 병자식 을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무안현감(行務安縣監)을 지냈다고 한다.


엉뚱한 돌을 보고 엉뚱한 사람을 찾아낸 것인지는 몰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뜻하지 않은 것들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종종 생기곤 하는 것이 서촌에 사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 인왕산
도움말 Daum 지도

버스정류장 근처를 오가다 보면 리틀 브라운은 눈에 잘 띠어도 그 옆에 있는 가게는 눈에 잘 안들어온다. '끼니와 새참'이라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부터 석장 짜리 대자보가 붙어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은 지난 달 23일이었다.


_IMG_2541
_IMG_254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간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근래에 서촌이 겪고 있는 변화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가게이다. 이와 비슷한 가게들은 지금 동네에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자하문로 양편으로는 바로 옆의 전산소모품 가게 처럼 인쇄용품이나 허름한 옷가게들도 꽤나 있는 편이지만 최근 들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자하문로는 왕복 6차선 도로다. 대로변인 만큼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일 수 밖에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러한 맥락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_IMG_2276
_IMG_2276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전 모롤화점 주인님! 앞으론 법대로 외치시더니 뒤로는 몇십년을 세금포탈하셨더군요. 임대수입이 있으면 반드시 세금신고 하셨어야죠!


_IMG_2280
_IMG_2280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저는 권리금 한 푼 없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참담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10여년전 2003년 8월 보증금 1300만원 권리시설비 합 4,000만원에 생계를 목적으로 장사를 하면서 임대료 한 번 밀려 본 적 없었습니다. 재계약시 마다 임대료를 올려주어 현재는 월 90만원씩 임대료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1년 5월 말 경 전 모롤화점 주인은 갑자기 2011.6.9 까지 가게를 비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고, 계약기간이 남았으니 계속장사를 하겠다 하였습니다.

그 후로 모롤화점 주인은 제 가게만 임대료를 받으러 오지않고 양쪽 옆가게들만 몰래와서 받아가곤 했습니다. 지난 10여년동안 오로지 현금으로(월 90만원)만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계좌번호는 구경도 못하고 계약서상의 근거로 임대료를 받아 가실것과 계좌번호 보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휴대폰 문자로도 몇 번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어 우체국을 통하여 우편환으로 2회에 걸쳐 임대료를 보내니 모롤화점 주인은 임대료를 보내지 말 것과 명도소송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온 것입니다. 모롤화점 주인은 고의로 피하면서까지 임대료 3개월 이상 밀리면 명도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의 만행을 법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계획적으로 쫓아내려고 온갖 횡포와 수단과 방법을 지금도 자행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3개월 임대료 밀린 원인으로 권리금도 한 푼 없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양자의 이해와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것이겠지만, 일단 대자보의 내용만 봤을 때에는 충분히 억울할 일이고,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참 고약한 경우다. 앞에서는 '전 모롤화점 주인'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모롤화점 주인이 바뀌었고 현재의 주인이 아닌 예전 주인이 당사자가 되는 듯 하다. 그렇다면 지금 모롤화점에 붙어있는 'SINCE 1948'는 주인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근거가 뭘지도 궁금하다.


_IMG_2545
_IMG_254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왕복 6차선 도로 변에 있는 가게가 재계약 때마다 세를 올려주어서 현재 월 90만원이라면 결코 비싼 세는 아니다. 자하문로 이면에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변에도 월세로 100만원을 부르는 것이 요즘의 동네 호가인 것을 감안하면 월 90만원은 상당히 싼 편이다. 그렇다고 월세 100을 부르는 자리라고 모두 점포가 입주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년 새에 호가는 2배 이상 높아졌지만 실제 그만큼 장사가 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 상인들은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가고 가게는 비워진 채 건물주도 임대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근래의 동네 현황으로 보인다.


새로 가게를 들이는 데 성공한 경우, 건물주는 이득을 본다. 반대로 새로 들어온 세입자는 가게를 뺄 때 받아 낼 권리금 외에는 이익을 보기 힘들어진다. 결국 집주인만 돈을 번다.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상인들은 내 가게가 아닌 이상에야 열심히 일해서 임대료 올려주고 나면 권리금 밖에 손에 쥘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동네에 새로 열리는 가게들 중에는 장사에는 관심 없고 권리금만 노리고 들어온 신선같은 가게들이 많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인심 좋은 재밌는 가게라고 트위터에, 블로그에 자발적으로 광고도 해준다. 작년 가을부터 눈에 도드라지기 시작한 흐름이다. 실제 삼청동과 같은 동네에서 장사는 못해도 권리금만 잘 챙기면 돈 벌어 나오는 경험을 통해 돈버는 법을 배워온 이들이 적지 않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세가 뛰고 권리금이 붙다보면 결국 장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리 잡을 수 없는 동네가 된다. 높은 세와 권리금이 정착된 자리에는 오로지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들어올 수 있다. 그 수익률을 떠받치려면 동네 거주자들로는 부족하다. 삼청동, 인사동 처럼 관광객들, 방문객들이 북적여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사는 동네가 아니어야 한다. 삼청동이 고향이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고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요즘 서촌 사람들은 다들 옆동네 삼청동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려워 한다.


임대료는 올라가고, 못 보던 가게는 늘어난다. 권리금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제 사람 사는 동네는 더 이상 어렵다. 그런 흐름이 '끼니와 새참'에 붙은 대자보에서 읽힌다. 고민은 갈수록 깊어간다.


  1. 서촌토박이 2012.09.23 03:25

    끼니와 새참의 경우 월세가 싼 편이 아닙니다. 3평 밖에 안되는 자리에 90만원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건물 다 세가 엄청 비싸고 권리금도 인정안하고 쫓아보내기에 근근히 버티고 있는 불쌍한 세입자들입니다. 불법증축으로 다닥다닥 상가를 만들어 말도안되는 비싼 월세 받으면서 막대한 시설비를 투자하고도 시설권리금을 못받게하고, 당당하게 내쫓는 곳, 심지어 건물주 본인이 쫓겨난 세입자의 시설권리금도 챙기는 곳, 서촌에 (구)모롤화점과 같은 세입자를 노비쯤으로 생각하는 망나니 같은 악덕 건물주 많습니다. 삼청동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아마 삼청동 처럼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서촌은 역사적으로 신분도 낮고 못살던 사람들이 대대손손 살아와서 요즘 서촌의 변화에 편승해 원주민들의 부동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억눌려왔던 저신분 저소득층으로 살아왔던 자격지심이 자본주의의 악마성으로 단시간내에 드러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부동산가치 상승으로 곧 신분상승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게다가 신사가로수, 홍대, 신촌, 북촌, 삼청동 등 흔히 일어나는 건물주의 추악한 모습을 단시간내에 뛰어넘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이러한 위험을 모르고 삼청동 북촌에서 한탕했다는 얘기를 주워듣고 손님없는 가게에서 도도하게 자리차지하고 있는 바보같은 "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진짜 선수는 서촌에 건물, 땅 샀지 세입자로 권리금장사 안합니다. 서촌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자본주의 바보, 악마와 사기꾼이 득실거리는 볼상 사나운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역 서촌 일대 특히 자하문대로변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업소는 사기꾼에 가까운 건물주 기생충들이 많으니 조심들 하세요. 아줌마들이 운영하는 중개업소 몇 개는 100% 건물주 편이라 100%당합니다. 쫓겨나는 피해자 급증하고 있습니다. 요주의하세요.

    • 김 한울 2012.09.30 20:30 신고

      지나던 길에 다시 봤더니 '끼니와 새참' 자리는 옆에 있던 '리틀브라운'이 확장하여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최근 서촌의 변화의 양상을 봤을 때에 상징적으로 읽히는 부분이 있어 적잖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권리금 장사가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알만한 분들은 어느 부동산에서 어떻게 부추김을 하고 다니는지 짚고 계시더군요. 저도 동네에 세입자로 살면서 이 동네에 있는 부동산이라면 한 번 쯤 들어가보지 않은 곳이 없습니만, 좋은 부동산을 만나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더군요.
      유리창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보고 '끼니와 새참'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작년 말부터 바로 얼마전까지 임대인의 욕심과 횡포로 사라진 가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임대인의 욕심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불경기 속에 부동산이 수입을 챙기기 위해 임대인을 현혹시키고 다니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 하고요. 앞으로 세입자들은 더욱 힘들질 듯 합니다. 그래서 세입자들이 뜻과 힘을 모은다면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 경복궁 2012.10.09 23:56

      리틀브라운도 살인적인 월세로 쫓겨나다시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촌세입자연합 한번 만들어보세요. 악덕부동산업자, 악덕건물주 블랙리스트도 만들고요~^^;

  2. 김 한울 2012.10.26 13:03 신고

    많은 분들이 생각은 하고 있지만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여러모로 껄끄럽고 어려운 관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임대인의 입장에 서서 영업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임차인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답은 결국 고립된 임차인 개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당장 리스트를 만드는 일 보다는, 무언가 해답을 고민하고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듯 합니다. 이 글의 comment 에 secret 체크 하시고 비밀글로 간단한 소개와 연락처(e-mail, 핸드폰) 남겨주시면 고민을 나눌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遊山西村 유산서촌


陸游 육유

지난 겨울 농가에서 담근 탁한 술을 쉽게 보지 마오

풍년들어 닭과 돼지는 손님 맞기에 충분하니


산도 물도 다하여 길이 없나 했건만

버드나무 깊숙히 꽃 만발한 마을이 다시 하나


피리소리 북소리가 노니니 춘사(春社)에 가깝고

수수한 차림새는 옛 향취를 품었네


이제부터라도 한가로이 달맞이 갈 수 있다면

지팡이 쥐고 밤 어느때고 문을 두드리리라


莫笑農家臘酒渾 막소농가납주혼

豊年留客足鷄豚 풍년유객족계돈

山窮水盡疑無路 산궁수진의무로

柳暗花明又一村 유암화명우일촌

蕭鼓追隨春社近 소고추수춘사근

衣冠簡朴古風存 의관간박고풍존

從今若許閑乘月 종금약허한승월

拄杖無時夜叩門 주장무시야고문








통인동 154-10번지에 서 있는 낡은 한옥 한 채. 그것은 이상(李箱)이 살던 집이 아니라 이상이 떠난 후 땅이 나뉘고 새로 지어진 집이다. 현재 그 대지와 건물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소유하고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는 4명의 건축가와 함께 그 집을 허물고 이상을 기념하는 박스형태의 건물을 신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난 지금 현재 상황에서 '터를 기념한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어떻게 토지를 통해서 누군가 혹은 그 누군가의 무엇을 기념하고 기릴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답, 아무런 유물도 없이 지적도 경계로만 남은 흔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고민. 그것 없이 어떻게 무언가가 기려지고 기념될 수 있을까.

욕된 유물처럼 지워지는 대지의 기억. 우리가 쓰다듬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용도 폐기되는 것들.. 이상이 떠난 후 그가 그의 인생 대부분을 의탁했던 집이 처했던 운명이 그러하였던 것 처럼 지금 저 이상의 집터 위에 위태하게 걸려있는 집이 처한 또 다른 철거의 운명 앞에서 우리는 두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끝내 그 처절한 질문 앞에서 누군가 납득시킬만 한 변명이 내어지지 못한다면 난 과감히 저 욕된 자들의 이름 위에 침을 뱉고 말리라


<이상의 집> 관련 이력 보기


관련기사 보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