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항공사진과 컴퓨터 회로의 현미경 사진은 상당히 비슷하다. 특히나 공단지대 같은 경우는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인위적인 도시계획을 통해 조성된 도시일수록 둘은 더 구분하기 어렵다. 위의 이미지는 다음지도에서 한국GM 부평공장을 캡춰한 것을 80387 CPU 회로사진과 같은 크기로 붙여 본 것이다.
다른 요소들의 유사성들도 짚어보면 둘은 단순히 겉모양에서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같은 기능을 가지는 단위는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유리하고, 그렇게 기능 모듈을 형성한다. 서로 교통이 빈번한 모듈 끼리는 인접한 것이 유리하고, 그렇게 또 단위 모듈이 된다. 단위 모듈들은 각각의 기능 모듈간의 연결 모다 넓은 폭으로 연결되며 전체 모듈을 이루고, 전체 모듈이 외부와 이어지는 연결은 모듈 내에서 가장 큰 폭의 연결이 된다. 도시에서는 '주도로'가 되고 회로에서는 '버스'가 된다. 도시도, 회로도 이러한 요소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설계하는 설계자가 있다.
계획된 도시에서 사는 것은 마치 회로의 도선 위를 질주하는 하나의 전자 입자가 된 듯 한 느낌이다.
덧붙여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더 해보자면, 회로의 도선 위를 질주하는 전자의 속도는 도선의 넓이에 비례하여 빠르다. 세부 연산이 일어나는 좁은 도선 위의 전자가 더 느리고, 데이터가 외부로 연결되는 넓은 도선 위의 전자는 더 빠르다. 도시 내에서도 일반 도로 보다는 골목에서는, 골목 보다는 주차장에서는 속도가 더 느릴 수 밖에 없고, 도시 순환도로나 도시 간 고속도로에서는 속도가 빠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클럭(CLK)이다. 회로는 지금 보다 더 작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위를 질주하는 전자의 속도가 제각각이라면 회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각각의 전자가 저마다 자신의 속도로 도선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회로 전체에서 기준이 될 수 있는 시점을 제공해서 속도를 통제해야 한다. 전자회로에서 시점 제공은 클럭이 하고, 이 기준시점에 맞춰 전자의 속도를 정렬하는 일은 레지스터가 한다.
클럭과 레지스터 기능은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클럭과 레지스터가 더 빠른 회로를 가능하게 할수록 회로는 더욱 작고 조밀해진다. 그렇다면 도시에서의 클럭과 레지스터는 무엇일지 생각을 펼쳐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재개발의 씨앗을 곳곳에 뿌려놓고 청와대로 들어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흔적이자 그를 이어받은 오세훈 현 서울시장의 성과다. 그 가운데 좌절되고 백지화 된 계획들이 몇몇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니 서울은 새마을운동에 이어 뉴타운운동 중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한옥선언」
2008년 서울시는 2000년 이후의 한옥에 관련 정책의 성과를 기반으로 「서울 한옥선언」을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노라면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한옥 등을 언급하며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듯도 하지만, 그 맥락을 살펴보면 서울시의 한옥선언이 가지는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서울 한옥선언」은 '01 서울의 미래자산, 한옥의 가치', '02 한옥선언의 필요성', '03 한옥선언 실천계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실천계획이 제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앞의 두 부분은 서울시가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 것이고 왜 한옥을 보존하자고 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문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굵은 강조)
역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경관 도시디자인 기본요소로서의 한옥
한옥은 역사도시 서울 고유의 경관을 대표하는 도시디자인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건강한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친환경 웰빙 주택, 한옥
최근 아토피 걱정 없는 한옥을 찾아 이사오는 젊은 부부들이 늘고 있습니다. 일상적 도시생활을 대표하는 동네, 한옥주거지 우리 고유의 생활문화를 체험하고 한옥거주를 희망하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습니다.
한옥주거지의 멸실 방지 필요 재개발사업에 의해 아파트 위주로 주거유형 획일화
급속한 한옥의 멸실
1960년대 이후 한옥이 급속하게 멸실 되어 왔고 2006년 이후 각종 개발사업에 의해 사라진 한옥만 해도 총 3,382동
서울시 전체 한옥 13,703동
서울성곽내부 3,654동
각종 개발사업에 의해 급속하게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신규 주택의 78%가 아파트
새로운 주거유형으로서 한옥거주에 대한 요구
한옥거주 희망 시민에 대한 대안 필요 데이빗 에드워즈(제36차 FIAC제안, 200804) 외국인으로서 한옥에 매료됨. 한옥건립장려 희망 WESTELK03(천만상상 오아시스, 200805) 정책적으로 한옥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부족 한옥보존 절실 피터 바톨로뮤(Peter E. Bartholomew) 한옥에 사는 외국인, 한국인 보다 한옥을 더 잘 아는 외국인
한옥주거지의 재생, 북촌을 통한 가능성 발견
북촌가꾸기사업
위기 속에 찾은 기회, 북촌가꾸기사업 전통문화체험의 메카로서 북촌의 가치 부각 전시회, 심포지움 등에서 각광 받고 있는 북촌의 한옥 해외에 소개되고 있는 북촌의 한옥 영국 Monocle지에 소개된 북촌 한옥 전시되는 14채 한옥 중 12채가 북촌 한옥
지방자치단체 한옥정책의 사례, 북촌 가꾸기 사업
중앙정부 차원의 한옥정책에 대한 관심 유도
한옥관련법령 제·개정을 위한 기반 구축 연구 및 관련법 개정 진행 중
중앙정부 차원의 한옥정책에 대한 관심 유도
한옥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변화
품격 있는 건축, 살고 싶은 한옥으로
나도 한옥에 살고 싶다!
한옥의 품격은 최대한 살리면서 실내를 간결하게 쓸모 있게 개조한 멋진 한옥의 등장
한옥의 현대화, 설비기술의 향상
불편하지 않은 주택으로, 건강한 거주문화를 대표하는 친환경 웰빙 주택으로 인식 변화
한옥, 이제 때가 되었다!
중앙정부의 한옥관련 제도개선을 이끌어내었고, 어러 지자체의 한옥사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해외한옥전시로 우리주거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서울시.
그동안 서울시가 선도해온 한옥정책,
이제는 나아가 '한옥선언'을 할 때 입니다.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한옥선언
골자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파트만 즐비한 서울의 풍경이 단조롭다.
디자인 서울에 맞는 풍경이 필요하다.
외국인들이 한옥을 좋아한다.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진다.
기존 한옥이 불편해서 보급이 어려우니 현대화 하자.
맥락적으로 보면 두 가지 정도가 주요하다.
디자인 서울
관광자원으로써의 한옥
보기에 그럴듯 한 풍경을 만들어서 관광객을 끌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 등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한옥들은 외관에 대한 내용 외의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뉴타운과 「서울 한옥선언」은 '새마을'에서 만난다. 새마을 운동은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지붕으로 갈아치웠고, 담장을 블럭 담장으로 바꿨다. 이유는 미관이었고 산업화 시기에 걸맞지 않은 낡고 남루한 옛 모습을 지우려는 노력이었다.
초가집은 아파트로, 슬레이트 지붕은 한옥으로 바뀌었다. 명목상 다양한 주거가 언급될 뿐, '외국인 보시기 좋았더라'로 귀결되는 것은 매 한가지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며 '한국인'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한국이 이렇게 현대화 된 줄 몰랐다'는 외국인의 감탄사였다면, 이제는 한옥 예찬이 그 자리를 바꾸어 넘겨받았다. 자기 시선을 가지고 스스로를 살피지 못하고 늘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검열하는 이 낡디낡은 반복은 판에 박힌 연속극 보다 봐주기 힘들다.
지난 7월 19일, 서울시는 은평뉴타운에 100동 규모의 '은평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지금 관련된 기사들이 속속 잇따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옥은 장식으로 남는다. 거창한 외관으로 으리으리하게 서있는 웨딩홀이나 대형교회 건물 처럼 모양새 꾸미기 위한 껍데기가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야말로 거대한 테마파크 조성계획이라고 이름 붙일 만 하다.
당연하게도 여기에 삶과 도시공동체가 끼어들 틈은 없다. 지금까지 아파트가 공급되어왔던 것 처럼, 주민조합을 결성해서 재건축을 추진해왔던 것 처럼 아파트 대신 한옥이 지어질 뿐 도시에 대한 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의 의지와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검열하는 얄팍한 자존만 생명을 이어간다.
속 알맹이 없이 겉 껍데기만 살아남는 한옥은 디자인을 '예쁘게 꾸미기'로 알고 있는 서울시의 중대한 오해의 연장으로, 주거와 미관을 건물과 외관으로만 이해하는 몰상식에 다름 아니다. 새마을은 뉴타운으로 직역되어 새한옥을 부르고 그것은 기존 재개발과 맞서는 듯 보여도 여전히 재개발의 논리와 마주닿은 채 새로운 모양새의 재개발로 거듭나고 있을 뿐이다.
서울시에서 간판 개선작업을 진행한 과정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기존의 낡은 간판이 새롭고 깔끔한 간판으로 교체되기 시작하니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어느새 서울시의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똑같은 모양의 간판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새로 달기 시작하던 간판이나 나중에 서울을 뒤덮은 간판이나 물리적으로는 다를 바 없었겠지만, 맥락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미 그 '디자인'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얄팍하게 그럴듯하고, 또한 얼마나 근본적으로 질환적인지 우리는 간판을 보고 알고 있다. 초가지붕 개량 사업을 하던 새마을 운동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옥'이 아니라, 600년 고도(古都) 서울을 지금까지 바라보고 개입해왔던 방식에 대한 반성이고, 그 가운데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소환이다. 편리한 생활만을 바라보다가 잃어버린 이웃과 골목을, 동네를 되찾는 일이어야 한다. 고 그것은 결국 개개의 인생이 삶으로써가 아니라 거대한 도시의 분업적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가슴서늘한 발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건축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도시계획에 대한 이야기지만 도시계획에만 국한 된 이야기도 아니며,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다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디자인과 한옥이 결국 새마을 운동과 재개발의 조금 세련된 수사를 포함한 재판에 불과하다면, 대도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 '새마을'이 '뉴타운'이 되어 돌아오듯, '아파트'가 '한옥'이 되어 도시를 좀먹는 미래는 빠르게 현실로 닥쳐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