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오늘로부터 정확히 3년 전인 2009년 9월 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관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서울성곽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의지를 천명한 가운데 열린 심포지엄이었다.


그 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임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였지만 서울성곽 복원 및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만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3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성곽 순성을 하며 현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민이 최우선임을 강조하며 형식적인 복원은 없을 것이라 한 것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박원순, "형식적인 서울 성곽복원 없다" - 서울문화투데이 (2012.1.31.)


성곽 구간에 따라서는 기존의 험준한 바위지형을 성벽 삼아 인공적인 성곽 축조를 생략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의 성곽 복원은 기존의 구간과 형태에 대한 고증이 얼마나 정확히 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왕산 정상부까지 복원이 완료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성곽 복원의 현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하지만 서촌에서의 일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풍경 중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성곽 복원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있다. 서울성곽 복원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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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능선 너머로 북한산이 보이는 자하문로 풍경 / _IMG_3289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태풍이 지나가고 비교적 청명하던 날씨에 북악산 서쪽 능선으로 구름 그림자가 져있다. 자세히 보면 북악산 녹지선이 수평에 가깝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 화면 가운데에서 갑자기 움푹 패여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누런 흙과 파란색 유실방지 덮개가 도드라지는 곳이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다.


북악산은 14세기 말 조선이 건국된 후, 한양이 새로운 도읍으로 정해지는 과정에서 풍수지리 상 주산이 된 산이다. 바로 이 북악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좌청룡이 대학로 뒷편의 낙산이고, 서쪽의 우백호가 서촌을 감싸고 있는 인왕산이며, 주산을 마주한 목멱산이 남산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북악산은 백악산이라는 옛 이름으로 명승 67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위의 사진을 부분 확대한 사진이다. 사진 가운데로 펜스가 쳐진 가운데 흙이 파헤쳐진 모습이 보인다. 궁정동에서 창의문로를 따라 자하문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편에 위치한 문제의 공사현장이다. 빌딩 창문 밖으로 북악산이 보이는 정동의 빌딩 창가에서도 눈엣가시처럼 시야를 괴롭히는 이 현자은 다름아닌 군부대 막사 신축 공사 현장이다. 언론 보도를 잠시 살펴보자.


환경단체 “북악산 군 막사, 명산·유산 훼손” - 경향신문 (2012.02.09.)



복원의 가면을 쓴 개발의 그림자

북악산에 군 막사를 신축하는 것과 서울성곽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의 관련은 보도에도 나와있다시피 막사 신축에 대한 수도방위사령부 측의 설명에서 발견된다. 옛 막사가 성곽과 가까운 까닭에 최대한 먼 곳에 신축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 그것이다.


서울 성곽을 복원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것은 600년 도읍인 서울의 역사를 알리고 자부심을 갖자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 정작 중요한 도읍 자체의 경관은 성곽 복원 사업으로 인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 공사현장은 서울환경운동연합과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등 여러 전문성 있는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꾸준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성곽의 '복원'이 또다른 얼굴의 '개발'로 다가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인 셈이다.


복원을 하더라도 개발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개발주도형 복원이 우리 사회의 한계인 것일까. 매일같이 올려다보게 되는 북악산 군 막사 신축 현장을 보며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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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앞에 놓인 인왕산 안내도 / _IMG_299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옥인아파트가 있던 자리의 수성동 계곡을 향해 가다보면 마을버스 종점 직전에 옥인제일교회가 나타난다. 가던 길을 따라 곧게 오르면 수성동 계곡을 거쳐 북악스카이웨이에 오르지만 오른편 경사로 방향을 틀면 불국사(佛國寺)가 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대나무 밭이 인상적인 사찰인데, 인왕산 석굴암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경주를 떠올리기 마련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인왕산에 함께 자리잡고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면 북악스카이웨이 중간에 있는 경비초소 앞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인왕산 정상을 포기하고 왼편 길을 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석굴암 약수터'가 나온다. 북악스카이웨이 윗쪽으로 만수천, 인왕천과 함께 수성동 계곡의 상류를 이루는 약수터 중 하나이다.


석굴암 약수터에서 가파른 계단 300여개를 10분 남짓 오르면 계단 끝으로 석굴암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거대한 바위가 얹혀있고, 그 바위 아랫틈으로 문이 나있는 것을 보면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바위틈의 암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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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 콘크리트로 벽을 막아 입구를 낸 석굴암 / _IMG_3007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한자로 적힌 석굴암이라는 이름을 보고 새삼 뜻을 풀어보니 '바위굴 암자'라는 의미이다. 고유명사 보다는 일반명사 처럼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을 해보니 석굴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는 경주 토함산은 물론, 양주 오봉산(북한산), 서울 도봉산, 제주 한라산에도 있었다.


주 출입구 반대편으로도 작은 출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이 곳을 보면 인왕산 큰 바위들이 굴러 깨진 틈새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의 모양이 그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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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뒷문 / _IMG_301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사진을 찍던 날은 그 며칠 전 신교동 골목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새벽에 인왕산 석굴암에 가서 산꿩을 여러번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산꿩을 만날까 나름 이른 시각에 올라본 것인데, 너무 늦은 탓인지 그 날은 산꿩이 내려오지 않은 탓인지 아쉽게도 산꿩을 보지는 못했다.


올라간 김에 이리저리 석굴암 주변을 돌아보다가 앞마당 철봉 옆의 길을 보고 접어들었다. 길이 작은 능선을 돌아굽더니 커다란 바위 틈 아래로 난 세모굴 너머로 물이 고여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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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암 / _IMG_3030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천향암(天香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하늘천('天')의 첫 획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이채로왔다.


물은 머리위 큰 바위를 타고 내려와 바위 끝으로 떨어져 바위 웅덩이에 고였다가 골짜기를 타고 흘러갔다. 촛불기도를 금하는 안내문 뒤로 팽개쳐진 경고문이 이 곳을 '석굴암약수터2'라고 불렀고, 수질은 그다지 좋은 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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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약수터 폐쇄 안내문 / _IMG_303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물이 떨어지는 바위는 바위끝 뿐만 아니라 그 아랫쪽으로도 습기가 가득하여 볕이 들지 않는 곳은 이끼가 가득끼어 있었다. 바위 전체를 타고 물이 나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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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암 바위 이끼 / _IMG_304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세상을 피해 석굴암에 숨어든 이야기가 몇 전하는데, 아마도 이 곳이 그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어느 서촌 토박이분으로부터 일제를 피해 명성황후가 몸을 숨긴 곳이 석굴암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의 발길은 잦았던 것 같다.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 유명세를 탄 탓일수도 있겠다. 천향암에서 나오는 길에 입구 바위 안쪽으로 새겨진 바위글씨와 그림이 눈에 띠었다.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려진 산의 윤곽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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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암 입구 바위 안쪽의 바위그림 / _IMG_305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숫자는 4283년 5월을 뜻하는 듯 했다. 단기 4283년이라면 서기로 1950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것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바위를 쪼아 새긴 글씨는 제법 흔한 것이어서 예전에는 무분별한 자연훼손이라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 이렇게 눈에 띤 것이 60년 전 낙서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나름대로 질박하게 드러나는 옛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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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향암 입구에 걸린 시 / _IMG_305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돌아나오는 길에 암벽 틈으로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미년(辛未年)이라면 1991년으로 20년 전에 불과하지만, 인왕산 등산로가 일반에 개방된 것이 1993년이니 그 때만 해도 이 곳 천향암은 말그대로 고적한 은처였으리라. 가슴을 치는 명문은 아니어도 인왕산이라는 제목으로 7·5조의 시를 짓고 걸어둔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인왕산


새벽공기한아름 가슴에안고

오백계단하나둘 약수터갈제

힘겨운맥박소리 구슬땀빚어

신성한천향수에 갈증을푸니

건강에비결일세 천약수라네


천향암옆을돌아 인왕을보니

절묘한암석들은 만물상인데

유순한인왕봉은 현모양처요

만상이신비스런 인왕산절경

경관이수려하여 명산이라네


석굴암독경소리 새벽이오면

경건한삼신불에 자애자비를

영험한삼신전에 속죄를빌며

저승의극락왕생 축원을하고

이승에만사형통 기원할거나


신미년 유월 이영원(李永元)


어제 아침에 산꿩 보러 석굴암에 올랐다가 천향암만 보고 내려오는 길에 수성동 계곡 접어들며 까치 한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주변을 이리 저리 살피며 걷는 모양이 짙푸른 도포에 뒷짐지고 아침 산책 나선 영감같아 재밌다고 쫓아가며 찍는데 뒤는 내내 신경도 안쓰다가 맞은 편으로 북악스카이웨이 산책객을 보고는 후다닥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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