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경험수련생'을 최저임금 예외로 두는 것이야 말로 '열정페이'입니다

- 종로구 정세균 국회의원의 '일경험수련생 보호에 관한 법률안' 대표 발의에 대하여


정세균 국회의장(종로구)은 오늘 16일 '일경험수련생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며 "청년열정페이 방지법 대표발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경험수련생'을 명확히 구분해서 수련생으로 위장하여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관행을 근절한다고 합니다.


빛 좋은 개살구 처럼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댓가 없는, 혹은 헐값의 품을 팔아야만 했던 많은 이들에게 희망찬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탓인지 보도자료가 배포되자마자 언론은 인용 보도를 하고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바른 진단에 따른 바른 해법일까요. '일경험수련생'과 '근로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정페이'가 고통을 주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 구분이 명확해지면 인턴, 수습, 실습생 등등의 이름으로 일하는 진짜 수련생들만 열정페이를 받기 때문에 가짜 수련생들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에 따라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법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는 이유가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한 임금의 하한선을 정한 것이 최저임금이라면 최저임금은 일경험수련생 여부에 무관하게, 오히려 일경험수련생일수록 더욱 지켜져야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최저임금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익히는 과정 자체가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투자 과정일 수 있고, 최저임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임금이지 충분한 임금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법은 시행령을 통해 수습 과정에 대한 최저임금 완화적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법

제3조(수습 사용 중에 있는 자 등에 대한 최저임금액) ① 「최저임금법」(이하 "법"이라 한다) 제5조제2항제1호에 따른 수습 사용 중에 있는 자로서 수습 사용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인 사람에 대해서는 같은 조 제1항 후단에 따른 시간급 최저임금액에서 100분의 10을 뺀 금액을 그 근로자의 시간급 최저임금액으로 한다.


인턴이든 수습이든 3개월 동안은 최저임금의 90%만 적용한다는 규정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일경험수련생'과 '근로자'를 명확히 구분해서 '근로자'에게 근로기준법과 최저입금이 지켜지도록 하여 열정페이를 방지하겠다는 보도자료는 뭔가 이상해 보입니다.


열정페이를 근절하겠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기존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권리 범위가 더 폭넓게 보입니다. 거꾸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을 일경험수련생은 보장받지 않아도 되는 것 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이번에 발의된 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열정페이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삶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옥상옥처럼 이미 있는 법 위에 새로운 법을 얹다가 오히려 '일경험수련생'이라는 이유로, '근로자'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더 가혹한 처우에 내몰리는 불쌍사는 일어나지 않을까요.


이 법을 빌미로 '일경험수련생'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바깥으로 내모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약한 '열정페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미 있는 법만 잘 지켜도 충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키지 않을 새로운 법을 만들기 보다 지켜지지 않는 기존의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일경험수련생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빈 상자에 보기 좋은 포장지만 씌운 이른바 '희망고문'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열정페이 계산법 / CC BY-NC-SA justlikeastar.tistory.co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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