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이라도 인왕산과 북악산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도 흔하고 청와대 뒷배경으로 우뚝 선 북악산도 화면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세종로에 서면 북악만 보일 뿐 인왕을 보기는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인왕이 숨겨진 산이 되어버린 데에는 광화문 바로 앞에 말의 눈가리개처럼 세워놓은 정부종합청사 건물도 톡톡히 한 몫 하고 있다.
지난 달 수성동 계곡이 복원사업을 마치고 일반에 개방되었으니 이 계곡을 오가며 인왕의 능선을 눈에 익힐 기회는 늘어난 셈이니 인왕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낯익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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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 계곡에서 올려다 본 모습에서는 인왕산 중에서도 정상을 이루고 있는 치마바위가 시야를 채우는데, 치마바위 바로 북쪽 골짜기는 너무나 가파라 치마바위 발치에 있는 석굴암에서 길이 끊긴다. 석굴암 오르는 길 바로 다음 계곡으로 만수천을 지나 북쪽 능선을 타고 정상에 이르는 길이 있는데, 서촌에서 인왕을 오르기에는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등산로가 된다.
다른 동네에서 등산 오는 분들은 등산복에 장비까지 채비를 잘 갖추고 오기도 하지만, 말하자면 서촌의 동네 뒷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왕산은 마음 내키면 샌들 신고 올라가도 충분한 산이다. 하지만 그 가파른 산길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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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가운데 부분을 가로지르며 내려가는 짙은 골짜기가 인왕천이 있는 등산로이다.
지난 주말에는 만수천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성곽을 따라 사직단으로 내려오는 길 중간에서 왼쪽으로 길을 틀어 인왕천을 따라 내려와봤다. 만수천으로 오르는 길도 가파르다 했지만 인왕천 길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인왕천과 만수천 모두 수성동 계곡으로 흘러들지만 인왕천은 말 그대로 인왕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풍경도 바로 곁에 있는 다른 골짜기와 사뭇 다른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린 바위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기도 하고, 가파른 골짜기 따라 비좁게 나있는 돌계단길도 인왕산 자연암을 깎아 계단으로 만든 구간이 훨씬 길게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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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에 들어 붙여진 이름인데, 인왕사라는 절이 있다고 해서 인왕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 전에는 '서봉(西峰)' 혹은 '서산(西山)'이라 불리웠다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이 사직단 자리를 정하는 부분에서 인왕산을 서봉이라고 언급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인왕산의 한자 표기는 仁王山 으로 주로 쓰이는데, 일제 시대에 가운데 임금 왕('王') 자를 일본의 왕을 뜻하는 성할 왕('旺')으로 조작하였다 하여 성할 왕을 피해 仁王山 이라는 표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비록 한 번에 불과하지만 인왕산을 표기할 때에 성할 왕을 사용한 적이 있으니 딱히 일제의 조작에 의해서 성할 왕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인 듯 싶기도 하다.
인왕천 약수터 옆에 새겨져 있는 바위 글자 / _IMG_2585 by redslmdr |
하지만 해방 이후 극일감정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인왕천 옆에 새겨진 바위 글씨를 보면 가운데의 성할 왕 자의 날일 변이 지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좌우 살필 것 없이 일제의 흔적이라면 없애버리고 싶었던 감정도 부당하다 할 것은 아니지만, 전후를 살피고 정확한 근거에 따라 판단하고 보전 여부를 결정하는 냉철함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인왕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경사 탓에 딛고 내려갈 바위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하나씩 바위를 밟고 내려가던 도중 재미있는 돌 하나를 발견했는데, 계단석 중 하나로 쓰이고 있는 돌에 글씨가 새겨진 흔적이 눈에 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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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바위를 촬영할 때에는 왕대곤('王大坤')으로 읽었는데, 이미지를 살펴보면 첫 글자가 모호하다.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깨서 계단으로 놓은 것인지, 글씨를 새기다 잘못된 것을 계단으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호기심에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앞 글자를 성씨 김('金')이라 가정하여 인물을 찾아봤더니 순조(19세기 초) 때에 홍문관(弘文館)을 한 인물이 한 명 검색된다.
김대곤(金大坤), 본관은 서흥으로 순조 16년 병자식 을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무안현감(行務安縣監)을 지냈다고 한다.
엉뚱한 돌을 보고 엉뚱한 사람을 찾아낸 것인지는 몰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뜻하지 않은 것들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종종 생기곤 하는 것이 서촌에 사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