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2가 YMCA 뒷편으로 가면 <삼숙이라면>이라는 라면집이 있습니다. 그 가게 앞 골목이 '가장 좁은 골목길'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연지동에도 그에 못지 않은 좁고 긴 골목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폭도 더 좁고 길이도 더 긴 것 같습니다. 연지동 동네 분들은 알아차리실까요?
많이 알려지면 방문객으로 몸살을 앓는 게 요즘 종로의 골칫거리인 만큼, 동이름만 알려드리고 어디인지는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종로2가 YMCA 뒷편으로 가면 <삼숙이라면>이라는 라면집이 있습니다. 그 가게 앞 골목이 '가장 좁은 골목길'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연지동에도 그에 못지 않은 좁고 긴 골목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폭도 더 좁고 길이도 더 긴 것 같습니다. 연지동 동네 분들은 알아차리실까요?
많이 알려지면 방문객으로 몸살을 앓는 게 요즘 종로의 골칫거리인 만큼, 동이름만 알려드리고 어디인지는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일상의 풍경으로 늘 마주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잊혀져버리고 마는 것들이 있습니다. 2013년의 '북촌의 봄'을 다시 보며 2016년의 '북촌의 봄'은 얼마나 달라져있을 지 생각해 봅니다.
어느 여름날, 수성동계곡 인왕산 산책길 근처에서 산책하던 까치의 모습
주말이면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길 중 하나가 삼청동길입니다. 새로 바뀐 도로명 주소에서는 '북촌로5가길'이지만 예전 도로명주소에서는 삼청동길의 일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북적이는 삼청동길에는 20년 전만 해도 세모난 건물 1층 세탁소까지 네모난 보도블럭이 마름모 모양으로 깔린 좁은 인도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삼청동길이 겪은 20년 동안의 변화는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할 정도입니다. 20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북촌 고개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초가집을 마주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그런 풍경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늘 북적이는 삼청동길이 그나마 한가한 때는 월요일 아침이겠지요. 월요일 아침의 삼청동길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시간이 다시 또 흐르고 나면 이 영상 속 풍경이 전혀 생경해지는 때가 또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변하든 적어도 쫓겨나는 슬픔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옥인아파트가 있던 자리의 수성동 계곡을 향해 가다보면 마을버스 종점 직전에 옥인제일교회가 나타난다. 가던 길을 따라 곧게 오르면 수성동 계곡을 거쳐 북악스카이웨이에 오르지만 오른편 경사로 방향을 틀면 불국사(佛國寺)가 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대나무 밭이 인상적인 사찰인데, 인왕산 석굴암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경주를 떠올리기 마련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인왕산에 함께 자리잡고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면 북악스카이웨이 중간에 있는 경비초소 앞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인왕산 정상을 포기하고 왼편 길을 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석굴암 약수터'가 나온다. 북악스카이웨이 윗쪽으로 만수천, 인왕천과 함께 수성동 계곡의 상류를 이루는 약수터 중 하나이다.
석굴암 약수터에서 가파른 계단 300여개를 10분 남짓 오르면 계단 끝으로 석굴암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거대한 바위가 얹혀있고, 그 바위 아랫틈으로 문이 나있는 것을 보면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바위틈의 암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싶다.
|
한자로 적힌 석굴암이라는 이름을 보고 새삼 뜻을 풀어보니 '바위굴 암자'라는 의미이다. 고유명사 보다는 일반명사 처럼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을 해보니 석굴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는 경주 토함산은 물론, 양주 오봉산(북한산), 서울 도봉산, 제주 한라산에도 있었다.
주 출입구 반대편으로도 작은 출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이 곳을 보면 인왕산 큰 바위들이 굴러 깨진 틈새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의 모양이 그대로 읽힌다.
|
사진을 찍던 날은 그 며칠 전 신교동 골목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새벽에 인왕산 석굴암에 가서 산꿩을 여러번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산꿩을 만날까 나름 이른 시각에 올라본 것인데, 너무 늦은 탓인지 그 날은 산꿩이 내려오지 않은 탓인지 아쉽게도 산꿩을 보지는 못했다.
올라간 김에 이리저리 석굴암 주변을 돌아보다가 앞마당 철봉 옆의 길을 보고 접어들었다. 길이 작은 능선을 돌아굽더니 커다란 바위 틈 아래로 난 세모굴 너머로 물이 고여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향암 / _IMG_3030 by redslmdr |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천향암(天香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하늘천('天')의 첫 획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이채로왔다.
물은 머리위 큰 바위를 타고 내려와 바위 끝으로 떨어져 바위 웅덩이에 고였다가 골짜기를 타고 흘러갔다. 촛불기도를 금하는 안내문 뒤로 팽개쳐진 경고문이 이 곳을 '석굴암약수터2'라고 불렀고, 수질은 그다지 좋은 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
물이 떨어지는 바위는 바위끝 뿐만 아니라 그 아랫쪽으로도 습기가 가득하여 볕이 들지 않는 곳은 이끼가 가득끼어 있었다. 바위 전체를 타고 물이 나오는 듯 하다.
천향암 바위 이끼 / _IMG_3045 by redslmdr |
세상을 피해 석굴암에 숨어든 이야기가 몇 전하는데, 아마도 이 곳이 그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어느 서촌 토박이분으로부터 일제를 피해 명성황후가 몸을 숨긴 곳이 석굴암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의 발길은 잦았던 것 같다.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 유명세를 탄 탓일수도 있겠다. 천향암에서 나오는 길에 입구 바위 안쪽으로 새겨진 바위글씨와 그림이 눈에 띠었다.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려진 산의 윤곽인 듯 했다.
천향암 입구 바위 안쪽의 바위그림 / _IMG_3051 by redslmdr |
숫자는 4283년 5월을 뜻하는 듯 했다. 단기 4283년이라면 서기로 1950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것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바위를 쪼아 새긴 글씨는 제법 흔한 것이어서 예전에는 무분별한 자연훼손이라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 이렇게 눈에 띤 것이 60년 전 낙서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나름대로 질박하게 드러나는 옛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
돌아나오는 길에 암벽 틈으로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미년(辛未年)이라면 1991년으로 20년 전에 불과하지만, 인왕산 등산로가 일반에 개방된 것이 1993년이니 그 때만 해도 이 곳 천향암은 말그대로 고적한 은처였으리라. 가슴을 치는 명문은 아니어도 인왕산이라는 제목으로 7·5조의 시를 짓고 걸어둔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인왕산
새벽공기한아름 가슴에안고
오백계단하나둘 약수터갈제
힘겨운맥박소리 구슬땀빚어
신성한천향수에 갈증을푸니
건강에비결일세 천약수라네
천향암옆을돌아 인왕을보니
절묘한암석들은 만물상인데
유순한인왕봉은 현모양처요
만상이신비스런 인왕산절경
경관이수려하여 명산이라네
석굴암독경소리 새벽이오면
경건한삼신불에 자애자비를
영험한삼신전에 속죄를빌며
저승의극락왕생 축원을하고
이승에만사형통 기원할거나
신미년 유월 이영원(李永元)
어제 아침에 산꿩 보러 석굴암에 올랐다가 천향암만 보고 내려오는 길에 수성동 계곡 접어들며 까치 한 마리를 만났다.
산책로 주변을 이리 저리 살피며 걷는 모양이 짙푸른 도포에 뒷짐지고 아침 산책 나선 영감같아 재밌다고 쫓아가며 찍는데 뒤는 내내 신경도 안쓰다가 맞은 편으로 북악스카이웨이 산책객을 보고는 후다닥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