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 뚜렷한 이념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내부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지역과 현장에서 멀어진 정당은 기능을 상실한 도구일 뿐입니다. 걸림돌은 치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당 노동당이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하고 해산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노동당 해산이 진보정당 운동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힙니다.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가 철저한 반성과 더욱 다듬어진 전망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늦었지만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모든 것에는 생명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순환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면, 결국 그 자체의 끝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적을 두었던 유일한 정당인 노동당(구 진보신당)의 운명이 그와 같습니다.

 

당 내 민주주의를 형식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형해화 하는 진보정당이라는 형언모순, 노동을 낡은 것으로 단정짓는 노동당이라는 형언모순 안에서 노동당을 주목하던 모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끝내 거꾸러지고 마는 고목을 바라보듯 애타는 가슴으로 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먼저 스스로 반성해야 할 일이라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끝으로 삼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삼겠습니다.

 

이제 제안되었을 뿐이지만, 노동당 해산은 이미 선언된 것과도 같습니다. 당 의결 기구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명실상부한 해산이 이루어지겠으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그는 그대로 노동당이 그 스스로의 생명력을 다하였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상징적 사건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당을 통해 저를 발견해 주신 분들은 물론, 저를 통해 노동당을 발견해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시간을 이제 의심의 여지 없이 과거의 것으로 접어두어야 할 때가 발치 앞에 닥쳐 왔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오르는 꽃과 같이, 산산히 흩어진 이 난파된 시간의 가운데에서라도 새로운 시간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겠습니다.

 

정당이야 말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실천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저는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 굳이 사족같은 말씀을 더하여 당부드립니다. 제가 언제 다시 당원의 이름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지 지금은 약속드릴 수는 없으나, 모쪼록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회의나 정치 자체에 대한 냉소 보다는 여전히 '세상의 주인이 될 우리들의 정당'에 희망이 있음을 기억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제 다시 부를 일이 있을 지 알 수 없는 노동당 당가의 가사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부디 강건하십시오.

노동당가 - 대지와 미래를 품고

 

우리는 길을 이어 가는 사람들 무너진 길을 다시 열어
미래로 한 발 또 한 발 가슴을 펴고 당당히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시련에 굴복하지 않으리
다시 한 발 또 한 발 비탈을 내려 간다

 

우리는 길을 이어 가는 사람들 무너진 길을 다시 열어
미래로 한 발 또 한 발 가슴을 펴고 당당히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시련에 굴복하지 않으리
다시 한 발 또 한 발 비탈을 내려 간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산으로 다시 오른다
대지와 미래를 품고 인간의 노래 부르며
산으로 다시 향한다

 

우리는 길을 이어 가는 사람들 무너진 길을 다시 열어
미래로 한 발 또 한 발 가슴을 펴고 당당히 간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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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해산합시다.

우리는 이십년 동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진보정당을 만들고 활동해 왔습니다. 작은 성취를 이룬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내 갈등을 조정하고 매듭을 풀기 위해 애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뼈아픈 반성 끝에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었던 정당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정당이었습니다. 
당내 민주주의가 관철되고 자본주의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유능한 정당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 분당, 진보신당 창당, 그리고 통합안 부결에 이은 1, 2차 탈당, 사회당과의 통합과 노동당으로의 당명 개정.......... 
굽이굽이 돌아왔습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꿈을 잃지 않았고 소수이지만 옳은 길을 걷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탈당과 비선 논란 등으로 당은 활력을 잃었습니다. 
당원들은 냉소와 무관심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당의 위기를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당의 고문으로 당대회 의장으로 혁신위원회를 만들고 어렵게 혁신안을 당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혁신안은 사실상 방치되었고 낡은 관성은 그대로 유지되어 이제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당명을 바꾸자는 당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기본소득당’ 당명개정안이 당대회의 핵심 안건입니다. 
당명을 바꾼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본소득이 과연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책인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당명을 바꾼다고 무기력한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노동당 당명만 유지한 채 내부갈등을 안고 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 지도부가 노동당이라는 당명과 노동의 가치를 낡은 것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심화되는 내부갈등은 오히려 당을 더 앙상하게 만들고 이후 진보정치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진보정당은 진보정치의 수단이며 해방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뚜렷한 이념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내부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지역과 현장에서 멀어진 정당은 기능을 상실한 도구일 뿐입니다. 
걸림돌은 치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당 노동당이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하고 해산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노동당 해산이 진보정당 운동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힙니다.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가 철저한 반성과 더욱 다듬어진 전망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늦었지만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다시 사람을 만나고, 지역을 돌아보고, 현장을 찾을 것입니다. 
거기서 또다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주의 정당, 소외되고 박해받는 이들을 대변하는 대중정당, 사회변화를 이끌 수 있는 유능한 정책정당 건설을 모색하려 합니다.

 

우리는 매듭을 풀지 못하였습니다. 
풀 수 없는 매듭이라면 끊어야겠습니다.

 

노동당 해산합시다.

 

2019년 6월 26일

노동당 당원 김혜경, 이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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