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라'


모두를 분노하게 한 정유라의 말이다. 수능 전날인 15일 포항에 지진이 일어났다. 진도 5.5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벽이 무너지고 건물이 주저앉는 피해 보다 언제 다시 또 재앙이 덮쳐올지 일상의 모든 순간에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당장 건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안이고 공포다. 처음으로 수능 시험일이 일주일 연기됐다. 연기된 날짜에 다시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재난의 충격을 안고 다음날에 수능시험장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에 비해 훨씬 현명한 결정이었다.


'포항 때문에 나머지 수십만 수험생이 피해를 본다'
'포항 외 지역 수험생이 왜 피해를 봐야 하나'


지진의 공포를 체감하지 못한 수험생들이 원망의 말을 적고 있다고 한다. 수능시험일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딱드려 혼란스러운 처지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담을 거꾸로 포항 수험생의 탓으로 겨누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연재해를 피하는 것도 실력인가
흔들리는 땅 위에 사는 것을 원망해야 하는가


정유라의 말은 정유라라는 악인으로부터 나온 말이 아니라, 오늘의 정서를 비추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다만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던 말을 냈을 뿐인지도 모른다. 재난과 재앙, 예상치 못한 불행은 개인이 감내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일 뿐, 그것을 피해가거나 멀리 떨어진 이들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생각은 포항 지진으로 인한 수능시험일 연기를 바라보는 수험생들만이 가진 것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 혹은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정해지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어느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흔들리며 기울어지는 건물 안에서 뛰쳐나와야 하는 처지는 제비뽑기 처럼 운나쁘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만의 것으로 남겨두어야 하는가


사회는 갈수록 복잡하게 연결되고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삶의 모든 것들을 온전히 한 사람이 선택하고 책임질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건물주가 바뀌어 버린 순간, 그 건물주가 느닷없이 월세 입금 계좌를 없애버린 순간, 일방적으로 월세를 네 배 올려서 내라는 통보를 받은 순간, 새벽바람과 함께 거대한 덩치의 용역들이 강제집행을 위해 몰려드는 순간, 사지가 들린 채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버티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순간,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 1인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저 순간들로부터 완전히 안전한가.


연대는 우리 스스로가 그 만큼 더 연결되어 있으며 성숙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징표와 같은 것이다. 수능시험일 전날 흔들리는 교실에서 떨어져 내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뛰어나오는 공포와 언제 다시 지진이 덮쳐올 지 모른다는 불안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것이고, 함께 풀어내야 하는 문제다.


궁중족발은 지금도 계속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기둥을 잡고 버티고 있는 사람은 병상에 누워있는 김우식 1인이 아니라, 그에게 닥친 재앙이 오로지 그만의 문제는 아님을 아는 연대자들이다. 포항의 수험자들을 향해 눈흘기는 철없는 학생들을 비난하고 혀를 차기 전에 우리는 다른 재앙의 한 가운데에서 불안에 휩싸여 있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왔는가를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연대의 가치를 이해하고 사회적 연대를 향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이 실력이 아닌 것 처럼, 천재지변을 피하는 것도 실력이 아니다. 경제적 재난에 처하는 것도 무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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