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내사산(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 중 서쪽에 위치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기암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 연출하여 『인왕산 생태·경관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 토지극상인 소나무림이 주로 산림 고지대 능선부와 사면 암반부에 대면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일부 상수리나무림과 아까시나무림이 분포한다.
- 보전지역내 서식하고 있는 야생조류는 박새, 어치, 유리딱새, 소쩍새 등이 있으며 그 외 암먹부전나비, 작은주홍부전나비, 왕자팔랑나비 등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
종로구 공원녹지과 2148-2852~4
서울특별시 자연생태과 2115-7550~3
(홈페이지 http://ecoinfo.seoul.go.kr)
옥인아파트가 있던 자리의 수성동 계곡을 향해 가다보면 마을버스 종점 직전에 옥인제일교회가 나타난다. 가던 길을 따라 곧게 오르면 수성동 계곡을 거쳐 북악스카이웨이에 오르지만 오른편 경사로 방향을 틀면 불국사(佛國寺)가 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대나무 밭이 인상적인 사찰인데, 인왕산 석굴암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경주를 떠올리기 마련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인왕산에 함께 자리잡고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면 북악스카이웨이 중간에 있는 경비초소 앞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인왕산 정상을 포기하고 왼편 길을 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석굴암 약수터'가 나온다. 북악스카이웨이 윗쪽으로 만수천, 인왕천과 함께 수성동 계곡의 상류를 이루는 약수터 중 하나이다.
석굴암 약수터에서 가파른 계단 300여개를 10분 남짓 오르면 계단 끝으로 석굴암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 거대한 바위가 얹혀있고, 그 바위 아랫틈으로 문이 나있는 것을 보면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바위틈의 암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싶다.
바위 아래 콘크리트로 벽을 막아 입구를 낸 석굴암 / _IMG_3007 by redslmdr
한자로 적힌 석굴암이라는 이름을 보고 새삼 뜻을 풀어보니 '바위굴 암자'라는 의미이다. 고유명사 보다는 일반명사 처럼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을 해보니 석굴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는 경주 토함산은 물론, 양주 오봉산(북한산), 서울 도봉산, 제주 한라산에도 있었다.
주 출입구 반대편으로도 작은 출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이 곳을 보면 인왕산 큰 바위들이 굴러 깨진 틈새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의 모양이 그대로 읽힌다.
사진을 찍던 날은 그 며칠 전 신교동 골목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새벽에 인왕산 석굴암에 가서 산꿩을 여러번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산꿩을 만날까 나름 이른 시각에 올라본 것인데, 너무 늦은 탓인지 그 날은 산꿩이 내려오지 않은 탓인지 아쉽게도 산꿩을 보지는 못했다.
올라간 김에 이리저리 석굴암 주변을 돌아보다가 앞마당 철봉 옆의 길을 보고 접어들었다. 길이 작은 능선을 돌아굽더니 커다란 바위 틈 아래로 난 세모굴 너머로 물이 고여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을 피해 석굴암에 숨어든 이야기가 몇 전하는데, 아마도 이 곳이 그 은신처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어느 서촌 토박이분으로부터 일제를 피해 명성황후가 몸을 숨긴 곳이 석굴암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의 발길은 잦았던 것 같다.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 유명세를 탄 탓일수도 있겠다. 천향암에서 나오는 길에 입구 바위 안쪽으로 새겨진 바위글씨와 그림이 눈에 띠었다.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그려진 산의 윤곽인 듯 했다.
숫자는 4283년 5월을 뜻하는 듯 했다. 단기 4283년이라면 서기로 1950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것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바위를 쪼아 새긴 글씨는 제법 흔한 것이어서 예전에는 무분별한 자연훼손이라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 이렇게 눈에 띤 것이 60년 전 낙서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나름대로 질박하게 드러나는 옛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돌아나오는 길에 암벽 틈으로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미년(辛未年)이라면 1991년으로 20년 전에 불과하지만, 인왕산 등산로가 일반에 개방된 것이 1993년이니 그 때만 해도 이 곳 천향암은 말그대로 고적한 은처였으리라. 가슴을 치는 명문은 아니어도 인왕산이라는 제목으로 7·5조의 시를 짓고 걸어둔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