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교통진흥특별대책지역 / CC 서울시


3월 15일, 서울 4대문 안이 “녹색교통진흥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서울시의 지정신청을 국토교통부가 전국 최초로 승인한 결과입니다. 사람과 환경을 중심으로 편의와 안전을 향상하는 조치로 축하하고 환영할 일입니다. 올 상반기 ‘녹색교통진흥지역 특별종합대책(안)’을 수립해 국토교통부 승인을 받을 계획이라 하니 구체적인 대책(안)의 내용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번 대책의 비전은 “승용차 없이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우선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도심”입니다. 녹색교통 확대, 승용차 교통량 감축, 온실가스 감축, 교통사고 사망자수 감축 등을 핵심지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차 없이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서 차 보다 사람이 쾌적하고 안전한 도심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직로의 관광버스 이중주차 행렬. 관광버스 불법주차 문제의 원인은 주차장 부족이 아닌 관광교통정책에서 찾아야 합니다 / CC 김한울


사직로를 포함한 주요 도로가 지정 범위에 해당합니다. 사직로에 합류하는 필운대로와 자하문로, 효자로 역시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입니다. 문제는 종로구청이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필운대로 지하주차장 설치 계획입니다.



주택가 주차장은 태부족, 주차장 신설로는 해결 불능


필운대로는 자동차로 가득합니다. 필운대로 뿐만 아니라 종로 전체가 주차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종로구의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75.1%에 불과합니다. 승용차 주차장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려면 주차장 면 수를 최소 30% 이상 늘려야 합니다. 1만대 분의 새로운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연합뉴스] '주택가 주차난' 종로·영등포·금천 심각…은평·성북 양호 - 2017.3.15.

종로구의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75.1%로 서울에서 가장 낮았다. 등록된 자가용 승용차는 3만 7천195대지만, 확보한 주차장은 2만 7천947면에 불과했다. 승용차 10대가 주차장 7∼8면을 나눠 써야 하는 형편이다.



기존 주차난에 관광버스까지 밀려들어 혼잡한 필운대로 / CC 김한울



하지만 놀이터와 근린공원 조차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차장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해결책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합니다. 주차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주차장 확충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서울시의 녹색교통진흥대책지역 지정은 이러한 문제해결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업무용 주차장을 공유하고 대중교통으로 편의 강화해야


종로와 중구의 전체 주차면수는 159.7%와 199.5%로 넉넉한 반면 주택가는 주차난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업무용 건물의 주차장을 주민과 공유하는 대책과 함께 주차장에서 주택가까지의 공공교통수단을 강화해서 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차난 때문에 도보 10분 거리에 주차하고 걸어서 귀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과 시간 후에 텅 비기 마련인 업무용 주차장을 공유하고, 주차장에서 집까지는 마을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방법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좋은 의견을 모으면, 서울 최악의 주택가 주차난의 불편은 줄이고 편리함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 투성이 지하주차장 계획, 종로구청의 강행 의지


그럼에도 종로구청은 무리하게 266억원을 들여 필운대로에 273면의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단순계산으로 주차장 한 면에 1억원 이상의 공사비가 투여되는 계획입니다. 굴착을 통해 터널식으로 공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인왕산 암반 속에 2층 높이의 주차장 건물이 들어서는 셈입니다. 공사중에 공사비 증가도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승용차 한 대를 주차하는 데에 1억원 이상을 내야 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선뜻 1억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을까요. 아무리 주차난이 심각하다고 해도 무분별하게 세금을 낭비하는 사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필운대로에는 역사문화거리 조성 사업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공사를 틈타 지하주차장도 함께 만들겠다는 것이 종로구청의 셈법입니다. 이 참에 지하주차장을 통해 통인시장과 금천교시장 방문객의 주차 편의를 도모한다고도 합니다. 서울시의 역사문화거리 조성은 보행 편의를 크게 확대하는 사업인데 종로구청은 더 많은 차를 불러들이려는 생각에만 잠겨 있습니다.


*역사문화거리 조성으로 인해 관광혼잡이 더욱 극대화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와 논의가 필요합니다.


노변이 대부분 거주자우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필운대로 전경 / CC 김한울


환경 면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필운대로는 청계천 상류의 물길을 모두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지하 2층 규모이지만 필운대로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깊이가 될 것이고 당연히 지하의 물길이 지하주차장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어 인왕산 생태계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터널 개통으로 인해 백사실 계곡의 생태계가 훼손은 이미 여러차례 서울환경운동연합에 의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얼마나 큰 문제가 있는지는 물론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전혀 확인된 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종로구청의 유별한 주차장 사랑


종로구청이 주차장 문제로 주민들과 불화를 빚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가까운 경기상고의 경우에도 지하주차장 건설 계획을 추진하다가 청운동 주민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결국 백지화 된 바 있습니다.


북촌에서는 재동초등학교 지하에 주차장을 건설하려다가 좌초됐습니다. 초등학교 주변에는 특히나 교통량과 운행속도를 엄격히 제한해서 학생 교통안전을 최우선 보장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종로구청은 거꾸로 운동장 아래에 주차장을 만들려 한 셈입니다. 역시나 재동초등학교 학부모를 비롯한 주민의 거센 반대에 백지화 되고 말았습니다.


[동아일보] 고갯길 깎고 학교지하에 주차장 추진… 고즈넉한 북촌 한옥마을에 웬 북새통? - 2013.5.21.

최근 종로구는 실내체육관 건립을 추진하는 118년 역사의 재동초등학교에 151면 규모의 지하주차장을 함께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운동장을 파서 △지하 2, 3층에 6600m² 규모의 주차장 △지하 1, 2층에 900m²의 실내체육관 △지하 1층에 관광안내소, 전시시설, 공용화장실 등을 만들자는 것이다.


어쩌면 종로구청의 집요한 주차장 사랑이 이번에는 필운대로를 겨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번에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녹색교통진흥대책 지역 지정과도 부딪치고 있습니다. 부디 서로 다른 방향의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어 세금의 효과가 무용해지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종로구청은 사업 관철을 위해 주민 갈등 조장해선 안돼


종로구청은 특히나 서촌에서 주민간 갈등을 방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장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불리던 ‘서촌’이라는 명칭을 배척하고 전에 없던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서촌’이냐 ‘세종마을’이냐는 이분법으로 주민들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촌주거공간연구회] 김영종 종로구청장의 '세종마을'. 역사와 주민에 대한 부정. - 2014.4.27.

결국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사람들이 멀쩡히 '서촌'이라고 부르던 동네 이름을 굳이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눈가림 해가며 '세종마을'이라는 없던 이름을 만들고 주민들을 부추겨 마을 이름을 두고 주민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 필운대로 지하주차장 역시 구청의 사업 관철을 위해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계획에 따른 공사 착공을 불과 한 달 앞두고서야 처음 열린 주민설명회는 그러한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차장 보다 세금의 효율적인 집행과 주민의 쾌적한 삶을 더 중요시 하는 종로구청이 되기를 바랍니다. 관광객으로 고통을 겪는 주민들은 아랑곳 없이 관광상품 개발하기에만 몰두하는 지금까지의 모습도 반성하고 주민의 삶을 되돌아보는 구청이 되기를 바랍니다.



창의문로는 청와대 근처 효자로에서 창의문을 지나 자하문로로 이어집니다. 이 길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조선시대에는 인조반정에서, 또 현대사에서는 일명 김신조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길입니다.



창의문로 구간 / 다음지도


자하문터널 개통으로 교통량이 줄고 한양도성 바로 옆에 있던 청운아파트도 도시경관의 문제로 철거 후 공원화되고 나서는 한층 한적한 길이 되었지만, 2007년 북악산 등산로 개방과 부암동의 유명세로 방문객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한가운데서 조금 비껴 인왕산과 북악산이 풍경을 이루며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 덕분이겠습니다.


지금, 이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길을 둘러싼 가장 큰 이슈는 관광버스 주차문제입니다.


창의문로의 관광버스 주차행렬 - 2015년 4월 2일 / CC 한울






시작은 2011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자인 서울과 함께 서울의 외국인 관광객 1200만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대부분 패키지 여행으로 오는 관광객이 급증하며 도심부의 관광버스 통행량도 덩달아 껑충 뜁니다. 이미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하자니 주차하기 바쁘게 다시 관광객을 태우러 가아하니 주차장 이용률도 높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서면 단체로 내리고 다시 버스에 오르는 관광이니 불법주정차를 피하기 위해 관광버스는 하릴없이 시내 도로를 주행해서 시내 교통난은 가중됩니다.



세종로를 차지한 관광버스 행렬 - 2015년 4월 8일 / CC 김한울



이러한 가운데 대안으로 나온 것이 도심부 내의 도로변을 아예 주차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불법주정차 단속을 피하느라 교통난을 가중시키는 불필요한 교통량을 되도록 줄여보자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서울경제] 경복궁 주변 불법주정차 관광버스 집중단속 - 2011년 9월 26일

대책에 따르면 시는 경복궁 주변에 주차장 안내팀을 배치해 이 일대에 주정차된 관광버스를 적성동·신문로 노외와 사직로·청와대·창의문로 노상 등 주변 주차장 5곳(116면)으로 분산 주차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대한뉴스] 텅 빈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 꽉 막힌 주변도로! - 2011년 11월 17일

관광버스 전용주차장을 두고도 도로변 불법 주차를 하고 있는 관광버스 기사에게 묻자, 경복궁 관광객들은 30분이면 다 보고 나오기 때문에 적선동까지 가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인근 면세점 주변에서 차를 대고 있는 관광버스 기사 역시 불법인 걸 알지만 시간을 맞추려면 일부러 떨어져 있는 전용주차장까지 가서 주차할 수 없다고 한다.


서울시의 관광버스 주차 안내 현수막 / CC 김한울



하지만 관광버스는 늘고 주차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서울경기케이블TV] 학생 안전 위협하는 관광버스 …근본 대책 없어 - 2016년 10월 18일



횡단보도나 골목길 주변에 대형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으면 길에 합류하는 차량이나 보행자와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이 서로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큽니다. 구간을 정해서 노상주차장을 운영한다지만 노상주차장까지 찾아왔는데 주차공간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불법주차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청운중학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창의문로를 이용하는 보행자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를 겪으며 교통안전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상황입니다. 이는 창의문로 뿐만 아니라 다른 노상주차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울시에서 서울시관광협회에 협조요청을 한 내용을 통해서 창의문로 노상주차장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관광협회] 관광버스 시간제 주차허용구간 관련 안내 - 2015년 3월 11일



왕복 6차선 이상인 자하문로에서도 한 번에 유턴을 하지 못하는 대형 관광버스 - 2013년 5월 6일 / CC 김한울



게다가 정차 중인 관광버스에서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미세먼지까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시동 켠 경유버스옆 초미세먼지, 10m밖까지 최대 3배 - 2016년 6월 8일

이날 오후 2시 관광객 전세 버스가 많이 몰리는 광화문 사거리 면세점 인근 도로에 전세 버스 여섯 대가 주·정차 중이었다. 공회전 중인 전세 버스 바로 뒤에서 측정기를 켜자 PM2.5 농도가 180~260㎍ 사이를 오르내렸다. WHO 기준보다 7~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측정기는 한 자리에서 최소 5분 이상 측정해야 정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배기구 뒤에 5분 넘게 서 있었더니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사에 나오는 초미세먼지 수치가 어느정도로 심각한 지 알아보기 위해 경보발령 기준과 예보 기준을 참고해보겠습니다.




미세먼지농도별 예보기준




초 미세먼지 경보발령 및 해제 기준



관광버스가 주정차된 도로변에서 10m 이내에선 최소 '주의보 예비단계' 수준의 초미세먼지 수치가 측정된 셈이고, 예보기준에서도 '장시간 실외 활동 가급적 자제' 수준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집회나 시위가 있는 경우,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의 경우에도 청와대 주변으로 경찰버스로 차벽을 둘러싸는 경우가 흔합니다. 겨울이면 난방 때문에, 여름이면 냉방 때문에 시동을 켜두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경찰버스와 관광버스가 한꺼번에 도로에 나오면 그 불편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경찰버스 차벽과 관광버스로 두 차선이 꽉 막힌 자하문로 - 2014년 6월 28일 / CC 김한울




경찰버스가 모자라 일반 버스를 빌려 도로변에서 승하차하는 경찰 - 2014년 5월 17일 / CC 김한울



도로변 관광버스 주차로 인해 보행자와 차량 승차자 모두 답답한 차벽에 풍경을 빼앗겨 버리는 것은 도시미관의 문제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바라는 '걷고싶은 도시'가 인도 한켠이 버스 차벽으로 꽉 막힌 도시일 리는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대형 관광버스 일렬주차로 시야가 막혀버린 자하문로 보도 - 2013년 8월 27일 / CC 김한울



관광버스 문제를 푸는 해법을 주차장 확보나 노상주차장 확대 등에서 찾아서는 더 복잡한 문제만 만들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장기적으로 대형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 관광 일색으로 서울 관광이 획일화되어버린 문제를 같이 풀어야 합니다. 단체 관광객이 전세버스 대신 대중교통이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하거나 단체 관광을 지양할 수 있는 유도책을 고안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물론 무분별한 경찰버스 차벽 설치와 주정차 문제도 함께 근본적인 해결이 모색되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과 경찰의 행정에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려워보입니다.


[국민일보] 서울경찰, 도심 관광버스 주차 허용 확대 - 2014년 11월 19일

경찰은 종로구 새문안로2길에 8대 주차를 새로 허용하고, 용산구 한남광장 교차로와 중구 숭례문 초입에는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을 설치한다. 중구 세종대로와 종로구 창경궁로는 모든 차량에 대해 주차를 허용하던 것을 관광버스 전용으로 바꾼다. 종로구 창의문길 및 사직로 등 2곳은 주차허용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관광버스의 불법 주정차 등 교통 무질서 행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관광버스 주차 특혜에 가까운 관광버스 주차장 확보에만 매진하고 있고,


[아주경제] "외래 관광객 2000만 시대 열자" 서울시-관광업계 ' 의기투합 - 2015년 8월 31일

서울시와 관광업계가 외래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열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서울시는 별다른 문제 해결책 마련 없이 이젠 관광객 2000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반가운 봄 인사드립니다.

삶의 일번지 종로의 봄 기호 5번 김한울입니다.


'정치 일번지' 종로

정치 일번지라는 이름 처럼 언론 보도에 늘 오르내리는 이른바 거물급 후보들이 종로에 출마했습니다.  오랫동안 종로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디딤돌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종로에 살고 있는 저를 포함한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 일번지는 삶에 와닿는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집은 낡아가고 오래된 길은 밤 마다 위험합니다. 관광객이 밀려와 살 던 집에서 쫓겨나고 세탁소 구멍가게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습니다. 삶이 이런데 정치 일번지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정치 일번지에서 삶의 일번지로!

이러한 마음을 담아 ‘정치 일번지에서 삶의 일번지로!’ 삶을 외치는 구호가 적힌 명함을 들고 한 달 동안 종로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2만장의 명함을 전해드렸습니다. 언론이 다루지 않으니 직접 발로 뛰며 만났습니다. 종로구 지역활동가로서 김한울이 해 온 활동을 알고 있는 이웃들께 입소문을 부탁드리며 다녔습니다.

말 뿐인 정치 일번지는 종로를 철새 도래지 처럼 만들었습니다. 종로의 삶이 자리잡을 곳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종로에 사람이 있습니다. 종로에 삶이 있습니다. 이제 종로는 정치 일번지가 아니라 삶의 일번지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일번지로 대한민국의 삶을 앞장서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국회 밖에서 '삶의 정치'를 일궈 온 노동당

노동당은 언제나 삶의 편에 서서 낡은 정치와 싸워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그리고 가족의 삶을 지탱해주는 가게에서 쫓겨나는 이웃을 만났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뉴타운 재개발로 고통받는 주민들 곁에 서있었습니다. 덕분에 지난 해에는 재개발 법안을 개정했고, 올해는 서울시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지금도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을 주민과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역사를 철거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쫓겨나는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임차상인에게 줄 돈은 없어도 철거 용역을 부를 돈은 있다는 건물주 앞에서 삶을 지키는 상인과 함께 했습니다.

주거지 보존 특별법과 임차상인보호법은 이웃의 눈물을 닦아드리며 봄 처럼 따뜻한 삶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결과입니다.


'맘편히 ... 세상'

맘편히 장사하는 종로의 봄을 만들겠습니다. 대학로, 종로, 북촌, 서촌, 이화동, 부암동. 봄이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옵니다. 관광지 개발이 아니라 종로의 삶과 상생하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손님은 늘어가는데 상인들은 쫓겨납니다.

“건물주가 세를 올려달라해서 잠을 줄였다”

한 상인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세가 오른 만큼 더 벌기 위해 잠을 줄여야 한다면 상인들의 삶은 아직 겨울입니다. 법을 바꿔야 합니다. 사이 좋은 이웃이었던 건물주와 상인이 하루 아침에 원수가 되는 법을 바꿔야 합니다. 저 김한울은 20대 국회에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상가임차인보호법>으로 바꾸겠습니다.

맘편히 사는 종로의 봄을 만들겠습니다. 2년 마다 이사갈 집을 찾아야 하는 삶은 아직 겨울입니다. 저와 같이 자녀를 둔 가정은 2년 마다 전학 걱정도 해야 합니다. 누구나 맘편히 살 수 있어야 좋은 세상입니다. <전월세 상한제>와 <이사걱정 없는 계약기간 10년>으로 봄 같은 종로를 만들겠습니다. 집 대신 가게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주거지 보존 특별법>을 제정하겠습니다. 

맘편히 일하는 종로의 봄을 만들겠습니다. 노동당은 20대 국회 1호 법률로 <최저임금 1만원법>을 약속드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아르바이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곧 월급명세서입니다. 세계적인 기준에 비추어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적게 받는 나라라고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시간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진짜 노동개혁입니다. 정규직 하나를 비정규직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초과노동 하나를 삶을 삶답게 누릴 수 있는 일자리 둘로 나누는 것이 진짜 노동개혁입니다.

맘편히 걷는 종로의 봄을 만들겠습니다. 왜 필요한 지 알 수 없는 전철 노선 보다 마음 편히 걸을 수 있는 인도가 더 필요합니다. 대형 관광버스가 골목 앞을 지나고 길목마다 주정차로 혼잡한 종로가 아니라 교통사고 걱정 없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종로가 필요합니다. 학교 앞 속도제한 강화, 휠체어와 유모차가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는 보행 환경을 확보하겠습니다. 장애인과 유모차가 편한 종로는 누구에게나 편한 종로입니다.


맘편히 함께 사는 세상

조은하,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권혁규,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이영숙

진도 앞바다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입니다. 나만 맘편한 세상이 아니라 함께 맘편한 세상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나오지 못한 희생자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성숙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세월호의 진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유권자 여러분, 저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감춰야 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포괄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에서는 아직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불안한 것은 밥상 뿐만이 아닙니다. 방사능 오염 건축자재로 건물이 지어집니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독립되어 믿을 수 있는 <방사능안전기구>를 만들겠습니다. 방사능 걱정 없이 맘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봄의 약속

지금까지 저 김한울이 약속드리고 있는 종로의 봄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약속은 종로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대한민국의 봄을 종로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종로에서 먼저 봄을 불러 주십시오.

저 김한울은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불편도 함께 겪고, 답답함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삶의 일번지 종로의 봄을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작은 싹에 물을 주지 않으면 가을의 수확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힘과 뜻을 모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기호 5번 김한울을 기억해주십시오.
노동당을 기억해주십시오.

투표로 국회를 바꿔주십시오.
정치로 삶을 바꾸겠습니다.

삶의 일번지 종로의 봄 김한울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다시듣기_ https://goo.gl/znwE7R

* 이상은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열리고, 4월 6일(수) 오후 8시, 7일(목) 오후 12시 30분에 티브로드/씨앤엠을 통해 방송된 후보자방송연설의 내용입니다.





서촌·망원동·연남동 모여라…SNS서 부활한 반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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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모임에서는 최근 이 일대에 심각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상권이 활성화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 주민과 상가 임차인이 내몰리고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만 들어차는 현상을 뜻한다.


서촌 주민인 김한울(38)씨는 "아직 구체적 행동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무래도 지역 현안인 만큼 함께 가슴 아파하고 문제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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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1.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20/0200000000AKR20160320001000004.HTML?input=1179m


서울시가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구역 개발행위허가제한(안)'을 가결시키면서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골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한옥지정구역 건폐율 60% → 70%

● 건축물 높이 16m 이하로 제한

● 비주거용도 건축물 신.증축 금지

● 주택을 음식점으로 바꾸는 용도변경 금지(젠트리피케이션 억제)


용도변경 금지는 젠트리피케이션 억제 보다는 상업화 억제라고 하는 편이 타당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죠. 구체적으로 세세한 결정 사항을 따져 볼 일이긴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는 환영할 만 한 일입니다.


저는 지난 수개월 동안 이 안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서울시청 쪽에서 자문의뢰를 받아 안을 검토하는 협의회의에 수차례 참석하며 적극적으로 개진한 의견이 상당수 받아들여진 점에서는 무척 기쁜 마음입니다. 이 대책으로 더 이상 폐지줍는 노인분들을 비롯한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오래 정붙이고 살아온 동네를 떠나는 일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기를 바랄 따릅입니다.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억제하고 도심 주거 공동화를 막기 위해서는 주거 공간의 공급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존의 주거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면서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인구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 유입되는 주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주공간 확대 방안을 함께 관철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점과 대책의 맥락은 사실 종로 전지역에 일괄 적용이 시급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서촌 지역에 특화된 것들이기에 각 지역에 따라 상당부분 조정이 되어야 하겠지만, 상업화에 토박이들이 밀려나는 일을 방지하고 거주 인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지가상승을 억제하거나 상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종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대동소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서촌의 매동초등학교는 물론이고 북촌 일대의 재동초등학교와 교동초등학교도 학생수 감소로 폐교 혹은 통폐합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여러 해 전입니다. 단순히 인구가 감소하니 그에 맞춰 공공 인프라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을 찾고 그에 맞춰 인구 유지 혹은 확대의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종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의 (동문이기도 한) 학부모님들이 폐교 혹은 통폐합을 막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이들 학교는 설립년도가 각각 1894년(교동초), 1895년(매동초, 재동초)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유산은 늘 박제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학교는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이 매일 등하교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유산인 셈입니다.


살아있는 역사유산인 종로가 그 역사를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종로 전역에 '제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지원'하는 대책까지 잘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 해당 기사

[한겨레]서울 서촌 한옥마을 상업화 일단 제동 - 2015.2.5.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76979.html

서촌 에서 수십년 삶을 일궈 온 파리바게뜨‬ 효자점과 ‎인영사‬ 세탁소는 맘 편히 장사하라는 이웃집 건물주에 의해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강제집행을 위해 새벽 5시부터 용역들이 대기했습니다.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맘상모‬ 회원들과 ‎노동당‬ 당원들은 밤새 가게를 지켰습니다.



몸으로 밀어내고, 사지를 들어내는 용역들에 맞서 끈질기게 싸웠지만 용역 안에 있는 사람들에 아랑곳없이 망치로 벽과 창을 부수고 들이닥쳤습니다. 벽을 내리치는 망치에 노동당원은 들것에 실려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버티고 버텼습니다. 이렇게 수십년 지켜온 삶터, 가족 모두의 생계가 걸려있는 생존의 보루에서 맨손 맨몸으로 쫓겨나갈 수는 없다는 각오로, 여기서 물러서면 끊임없이 쫓겨나고 밀려날 수 밖에 없음을 아는 이웃들의 연대로 함께 동트는 하늘을 맞았습니다.



집행관도 더 이상 어렵다 하고 용역들도 더 이상은 무리하고 하는데 강제집행을 맡겨놓고 부산에 내려갔다는 건물주는 계속 '강제집행! 강제집행! 강제집행!'을 외쳤다 합니다.



결국 5시간이 넘는 밀고 밀리는 싸움 끝에 건물주는 협상에 임했고 긴장감이 팽팽하던 현장은 순간 물과 먹을 것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건물주는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쫓아낸다도 했다 합니다. 하지만 건물주도 그 자녀들도 현장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당벌이 용역들과 연대의 끈으로 단단히 엮인 당원들이 서로 대치했습니다.


부만 가진 것이 아니라 뻔뻔함도 가졌습니다. 부만 가질 게 아니라 염치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되찾는 협상은 아니어도 타협을 이뤘고, 쫓겨나지 않기 위한 싸움은 삶의 종자를 지켜냈습니다.



그 동안 땀 흘리는 사람들이 늘 양보해왔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늘 잃고 빼앗겼습니다. 가진 이들은 늘 양보받았고 땀으로 일군 풍요를 독차지했습니다.


이제 더는 빼앗기지 맙시다. 더는 쫓겨나지 맙시다. 정당한 몫을 당당하게 찾읍시다. 삶을 되찾읍시다.


노동당이 함께합니다.


* [서울시당 논평] 서촌 '상가임차인 약탈', 다시 시작된 야만의 강제집행을 규탄한다



http://seoul.laborparty.kr/925

2013년 11월 22일, tbsTV 스튜디오에서의 생방송 토론 영상입니다. 2년 전의 토론이었지만, 여전히 '서촌'을 지우고 '세종마을'이라는 새 이름표를 붙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든 그 동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름은 관에서 정한 이름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명칭이 맞느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불리우고 있는 명칭을 관에서 정하는 명칭으로 강제로 변경할 필요가 있는가에 있습니다.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은 2011년에서야 처음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조선시대로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금천교시장' 조차 '세종마을'에 밀려 본디의 이름을 잃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로 불리는 일이 빈번합니다.




최근 '서촌'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기존 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으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을 굳히기 위해서 '복원'을 핑계삼아 땅을 파헤치고 길을 헤집는 토건사업을 더하는 것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불리우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글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소식지 매거진 내셔널트러스트 30호 [내셔널트러스트 여행]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ationaltrust.tistory.com/107



장면 1. 현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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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IMG_5024 by Kim Hanwoo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무언가 찾아 집집을 찾아 헤메는 이가 서촌의 골목을 바삐 걷는다. 술 좋아하는 체부동 김씨와 바둑 좋아하는 누각동 김씨까지 찾아 가 봤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해는 인왕산을 넘어 처마 밑으로 어둠이 피어나고 있었다. 며칠 공을 치니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귓가에 거문고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때였다. 누각동 이만호 집이 머리를 스친다. 김홍기가 거문고를 좋아하는 그의 집을 자주 찾는다는 이야기를 김홍기의 아들로부터 직접 들었다. 조용히 대문을 밀고 들어가 가쁜 숨을 고르며 거문고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묻는다.


“실례지만, 어느 분이 김노인이십니까?”


“여기에 김씨는 없소. 홍기를 찾나본데, 와도 예정이 없고 가도 언제 온다 않으며, 올 때는 하루에 두세 번도 오지만 오지 않을 때는 해를 넘기는 사람이오.”


날이 기울었으니 그가 다닌다 하는 집들을 물어서 다음 날에 기대해 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음날, 다시 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게 몇 집을 찾아갔을까. 지난 밤 술겨루기를 하곤 아침녘에 취기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는 답만 덩그러니 남았다.


김홍기라는 사람은 두루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어 김신선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그를 찾는 이는 연암 박지원. 그의 지혜가 우울증에도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마음에 새겨뒀다가 사람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신선은 찾지 못하고 만다.


서촌의 18세기 풍경을 아련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연암 박지원의 <김신선전(金神仙傳)> 내용이다.


조선의 지도를 들고 서촌의 골목을 걷다


연암의 <김신선전(金神仙傳)>은 체부동과 누각동에서 시작된다. 누각동은 누상동과 누하동의 옛 이름이다. 숨은 현자 김신선과 그를 찾는 박지원의 추적은 서촌의 골목 어디 쯤에서 엇갈리고 있었을까. 운 좋게도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도성대지도>는 조선의 서울을 가장 크고 세세하게 그린 지도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되었으니 <김신선전>의 인물들의 발걸음이 일으킨 먼지가 막 가라앉을 즈음이다. 붉은 선으로 길을 긋고 푸른 선으로 물을 그렸다. 물길을 덮은 아스팔트 아래로는 오늘도 청계로 향하는 물이 흐르고, 골목길을 덮은 보도블록 위로는 오늘도 서촌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18세기 조선시대 지도를 들고도 21세기의 골목길을 찾아 걸을 수 있는 곳, 바로 서촌이다.



[ 도성대지도(일부, 서촌) | 공공누리:문화재청 ]


지도를 보면 인왕산 아래 옥류동 물길 옆으로 구불구불 내려오던 골목길이 갑자기 한 곳에 모인다. 동네 밖으로 나갈 땐 모두가 만나는 곳이고, 동네로 들어설 땐 함께 들어와 흩어지는 곳이다. 길의 갈래는 다섯 갈래. 누하동 오거리다.


오거리는 조선시대 누하동 안의 작은 동네 이름들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다섯 오(五), 클 거(巨), 마을 리(里), 오거리(五巨里)다. 지금은 근처에 자리잡은 슈퍼마켓 이름으로 남아있다. 얼마 전까지는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으로도 남아있었지만 서촌에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이 덧씌워지면서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서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정류장을 오거리라 부른다.


누하동 오거리는 누하동, 체부동, 통인동, 필운동의 경계가 만나는 곳이다. 18세기 신선을 찾는 발길이 체부동에서 누각동으로 향했다면 지금의 누하동 오거리를 지나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래된 골목, 그 길과 길이 만나고 흩어지는 곳마다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발걸음. 옛 사람들이 걷던 길을 그대로 우리가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살갗으로 느껴지는 역사의 깊은 호흡은 서촌이 간직한 시간의 숨결이고, 서촌이 시간을 담고 있는 방식이다.


장면 2. 단짝 친구의 선물


서너살 쯤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두 아이가 오거리에서 인사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 아이가 몸이 불편하여 입학이 늦어진 바람에 둘은 동급생으로 몇 해를 지내며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됐다. 함께 걷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끊어진듯 이어지다가도 통하는 듯 막다른 길이었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유년에 동네의 골목길을 탐험하듯 돌아 다니다 보면 길 잃고 헤메는 일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둘은 그렇게 동네의 골목길을 함께 걷다가 헤어지곤 했다.


친구는 나무로 만든 그림도구 상자를 선물했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에 마음이 들뜬 아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별명을 ‘나무 상자’라는 뜻으로 지었다. 한자로 이상(李箱). 김해경이라는 본명 보다 직접 지은 이름을 더 자주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동네 단짝 친구, 구본웅 덕분이었다.


서촌의 시간은 길로 이어진다


한국의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서양화가 구본웅과 구본웅의 그림 <친구의 초상>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인 이상은 평생 친구이자 동네 친구였다. 누하동 오거리는 구본웅의 집과 이상의 집을 이어주고 있다. 그들이 걸었던 구불구불 막히기도 이어지기도 하던 골목은 이상의 시 <오감도>에 아해들이 질주하는 무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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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IMG_1275 by Kim Hanwoo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20년 전에 새로 놓인 넓은 찻길을 피해서 골목으로 다니는 서촌의 아이들은 누하동 오거리에 익숙하다. 필운동으로, 누하동으로, 누상동으로, 통인동으로, 체부동으로 만나고 갈라지는 오거리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사가 더 빈번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누가 알까. 지금도 일생에 남을 선물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우정을 키워가고 있는 어느 미래의 시인과 화가가 저 오거리를 지나고 있을지 말이다. 그렇게 서촌의 골목은 옛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의 이야기를 꿈꾸게 만든다. 서촌이 시간을 이어주는 방식이다.


장면 3. 캔버스를 들고 오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전쟁의 포화에도 불구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서촌에는 폭격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오거리는 마치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웠다.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오거리를 지나는 화가의 마음을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고향 떠난 고된 피난 생활이 결국 가족을 갈라놓았고, 그 후로 홀로 전국을 전전하다가 휴전 이듬해, 누상동의 고향 선배 집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가족과 다시 한 집에서 살 수 있는 방편의 하나로 개인전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가족과 그림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던 그의 발걸음은 재회의 희망에 부풀어 한결 가벼웠을 것이다. 그 마음을 담아 그린 작품에 <도원>과 <길떠나는 가족> 같은 제목을 붙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과 피난 가던 때를 화폭에 옮긴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중섭이다.


삶과 예술이 이어지는 시간의 교차로


누하동 오거리에는 수많은 화가들의 이름이 수놓여있다. 전쟁이 끝나고 속속 서촌으로 화가들이 모여든 것이다. 피난 시절, 이중섭과 함께 부산에서 단체전을 열었던 이봉상 화백의 집은 누하동 오거리에서 몇 걸음 안되는 곳이다. 이봉상 화백과 누하동 오거리를 사이에 두고는 천경자 화백도 자리를 잡았다. 이중섭, 이봉상과 부산에서 함께 단체전을 열었던 한묵 화백도 곧 이웃이 되었다. 누하동 오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고 인사하며 그림을 이야기 했을 전후 서양화가의 발자취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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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IMG_5010 by Kim Hanwoo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서촌엔 이미 당대 최고의 동양화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청전 이상범 화백은 이미 오래전 누하동에 청전화숙을 열어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있었다. 그의 스승은 심전 안중식이었고, 심전의 스승은 오원 장승업이었다. 시상대 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우는 작업을 맡았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후 언론사를 나와 후진 양성에 더욱 힘을 쏟고 있었다. 그의 집에 하숙을 하던 이 중에는 10대의 박노수도 있었다.


미술관 전시를 통해서만 만나던 이름들이 누하동 오거리를 만나면 살가운 이야기들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같은 곳에 출퇴근을 하던 이들 중에 독신이었던 한묵 화백은 이봉상 화백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잦았고 종종 천경자 화백의 집에서 끼니를 신세지기도 했다. 출근길에 누하동 오거리를 지나 이웃집에 들러 아침밥을 먹는 풍경에서 화가는 예술가 이전에 동네 삼촌이다. 언제든 달려가서 고민을 털어놓고 위안을 주고 또 받던 이웃들이 누하동 오거리를 오가며 이웃의 정을 쌓아온 것이다.


천경자 화백이 살던 누하동 집은 예술가 몇몇이 아뜰리에로 사용하고 있고, 곳곳에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오거리를 통해 오가며 정을 나누는 이웃 사이는 지금도 오거리에 서면 가던 길 멈춰 서서 한참을 이야기 나누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대로 다시 찾아 볼 수 있다.


시간의 골목, 시간의 교차로


서촌을 살다 간 이들의 이름을 모두 꼽으려면 숨이 차오를 정도다. 시인 노천명은 천경자 화백이 오거리를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다. 노천명 시인의 집 맞은 편에는 염상섭의 생가가 있었다. 같은 나이의 수주 변영로가 신교동에 살았다 하니 통인동 골목으로 오거리를 지나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도 떠올려 볼 수 있다. 김복진과 이여성은 당대 얼마 되지 않는 대표적 예술인 독립운동가로 두 사람의 집을 잇는 길 역시 누하동 오거리가 된다. 이여성은 청전 이상범과 함께 전시를 열었고, 김복진은 구본웅에게 조각을 가르쳤다. 



[ 누하동 오거리 지도 | 서촌주거공간연구회 ]


그 무수한 이름들이 누하동 오거리에 놓이는 순간 우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역사 속 아련한 인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길, 이 거리를 지금도 걷고 있는 누군가 처럼 느껴지는 경험 말이다. 구불구불 복잡하게 그물처럼 얽힌 골목처럼 시대의 이름들이 골목으로 얽히며 시간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하동 오거리, 골목의 숨결을 이어가는 방법


누하동 오거리에는 오래된 건물이 얼마 없다. 올해로 상수(上壽)를 맞은 한묵 화백이 50년 전에 살던 누각같은 2층 집도 지금은 자취를 알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 길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이다. 재개발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집은 물론 길까지 모조리 흔적없이 사라지는 시대에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역사의 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는 길이 남아있고 그 길을 오늘도 이야기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문화유산이라 하면 고색 창연한 건축물만을 떠올리며 그 안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걷던 길과 그 위에 놓여진 이야기의 호흡은 자칫 놓쳐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하동 오거리는 오래된 건물 보다는 오래된 길과 이야기를 읽는 눈을 불러낸다. 그 눈으로 역사 속의 이야기와 오늘의 삶을 함께 읽어낼 때, 우리의 삶 자체도 문화유산과 함께 빛을 발하는 살아있는 역사로 새겨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서촌주거공간연구회(최문용) ]


오늘의 서촌이 답해야 할 물음은 여기에 있다. 보존과 복원이 개발의 다른 이름으로 돌아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으로 새로 만들어 세우는데 급급한 지금,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숨결은 숨결 그대로 이어가는 노력과 자세에 대한 것 말이다.


과거의 발걸음이 오늘의 발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있는 역사와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누릴 자격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서촌을 수놓은 수많은 이름과 이야기들이 서로 만나고 교차하는 누하동 오거리에 오늘의 삶 역시 교차하고 있는 것 처럼, 시간의 교차로 누하동 오거리는 예전과 같이,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쓰여지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참고문헌

  1. 연암집(燕巖集) 제8권 별집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 김신선전(金神仙傳), 연도미상 (한국고전종합DB)
  2. 천경자, 思友 잊을수 없는 그때 그친구 <16> 千鏡子 <東洋畵家> (6) 萬年청년 韓默씨, 경향신문, 1979.10.3.
  3. 김창희, 서촌의 형제들이 꾸었던 꿈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길 - 1, 레디앙, 2013.4.23.


개발의 뒤안에서 시간을 퇴적해온 도시,  서촌


비 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 같은 정취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어렵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서촌 1. 역사 경관 도시조직의 변화, 서울역사박물관, 2010).


중인 신분으로 조선 후기를 살았던 학자 장혼이 글로 남긴 인왕산 아래의 동네 풍경은 지금의 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대로이다.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자리 잡은 서촌은 오래된 동네다. 장혼이 태어나던 무렵에 제작된 도성대지도를 펼쳐 보아도 지금의 골목길과 견주어 길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길의 모양이 그대로라면 땅의 모양도 크게 바뀌는 일 없이 전해 내려왔으리라 추측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문 기술직이 많았던 중인 계급이 주로 터를 잡고 살던 동네라 다닥다닥 처마가 맞닿은 필지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개발이 온 나라를 휩쓸던 때에는 오히려 청와대 근처라는 이유로 개발에서 소외되어 우연히도 옛 모습을 보존하게 되었다. 인왕산 비탈에서 내려다보면 시내의 높은 건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떨어뜨리는 곳,  낮은 주택들이 모여 있는 사대문 안에 몇 안 되는 오래된 주거지가 바로 서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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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촌 전경 · 김한울 찍음 / _IMG_008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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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서촌 전경 · 김한울 찍음 / _IMG_8202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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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서촌 전경 · 김한울 찍음 / _IMG_125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약속된 아파트 재개발은 개발 제한으로 낙후된 동네가 불만이었던 주민들에게는 장밋빛 미래였지만, 오랜 시간을 이어온 동네의 모습에 애착을 가진 주민들에게는 위기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의 북촌 한옥보존 정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서촌도 한옥 보존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옛 모습을 유지한 채 낙후한 환경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정도 600년을 외치지만 어느 하나 수백 년을 헤아리는 것이 변변치 않은 서울에서 최소한 300년은 족히 넘게 이어온 골목길을 품고 있는 일반 주거지가 어떤 의미일까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지켜낸 일은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동네 주민들이  ‘동네’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다

그렇다고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땅을 깎아 시간의 켜를 들어내고 콘크리트를 퍼부어대는 참극은 면했다지만, 옛 효자동 전차종점을 같이 써오던 이웃 동네 북촌과 삼청동이 불과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다른 세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잠시 쓰레기봉투라도 내놓으려 대문을 열어도 큼직한 카메라를 든 외지인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 예사라면 정든 동네라도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다.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는 북촌과 삼청동 이웃을 지켜본 서촌 주민들은 동네에 새로 들어서는 카페 하나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낡은 집들을 헐고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재개발이 아닌,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을 가벼운 구경거리로 전락시켜 토착민들을 쫓아내는 새로운 종류의 재개발이 등장한 셈이다. 게다가 서울시의 한옥보존 정책이 무색하게도,  구청은 단층 한옥 바로 옆으로 고도제한 20미터에 맞추어 7층 건물 신축을 허가하는 상황까지 반복되고 있다.  최악은 면했지만 차악도 최악 못지않은 것이다.


서로 지나며 인사하던 이웃들 사이에 걱정이 오가고 여기에 공감하는 이웃들이 늘어나면서 함께 모여서 얘기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모임 날짜가 정해지고, 알음알음 함께 걱정할 수 있는 이웃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이는 자리도 옛 재개발 추진위 사무실 자리에 새로 문을 연 카페로 정해졌다. 그렇게 첫 자리가 만들어지고 혼자 혹은 둘이 하던 생각과 이야기들을 여럿이 공유하면서 모임을 결성하는 데에까지 뜻을 모으게 됐다. 처음 모인 지 한 달 만인 2011년 6월 5일, 조촐하게나마 창립총회를 통해 회칙을 채택하고 임원을 선출하면서 시작된 것이 지금의 ‘서촌주거공간연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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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최근 서촌에 생기는 높은 건물들 · 김한울 찍음 / _IMG_148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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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최근 서촌에 생기는 높은 건물들 · 김한울 찍음 / _IMG_1504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우선 모임을 시작하게 된, 건물 신축 문제부터 풀어보고자 했다. 문제는 쉽지 않았다.  여러모로 대책을 찾아봤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구청의 소극적인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상황이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옥보존 정책과의 괴리 문제, 도시 경관의 문제 등의 이야기는 이미 처음부터 소용없는 것이었다.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지붕들은 높은 건물 발치에 엎드린 듯 납작하게 붙어 있는 모양이 되고 말았다.


이웃의 풍경이 동네에 대한 애착의 밑거름이 되고, 그러한 삶의 환경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은 희망이 ‘건축법상 하자 없음’이라는 한마디로 더 이상 변호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촌주거공간연구회(약칭 ‘서주연’)는 동네의 가치를 변호하고 지켜낼 수 있는 내용과 실천을 고민하기로 했다. 또한 각각의 집과 가정이 아니라 그 개개가 함께 모여 이루어진 동네로서,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삶의 공동체로서 마을을 인식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이 개개의 주민에게도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동네의 가치를 발굴하고 일구어나가는 데 뜻을 모았다.


처음과 같이 2주 간격으로 모임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원칙처럼 자리 잡혔고, 모임이 열리는 장소는 마침 동네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시민단체에서 제공해주기로 했다. 동네 주민들이 모이는 모임인 만큼 다른 약속이 없는 일요일 저녁 시간이 회의 시간으로 고정됐고, 정기적인 모임을 카페 등에서 전전하는 것에 비해 휴일 저녁의 빈 사무실을 활용하는 것이 맞춤했다. 동네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에게 조건 없이 열려 있는 커뮤니티 공간의 안정적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얼마 되지 않는 모임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함께 나누는 시간과 이야기가 많아져야

안정적인 모임 장소가 제공되는 가운데, 활동의 범위도 천천히 늘어갔다. 철거를 앞둔 한옥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그 뒤를 이었고, 겸재 정선의 그림을 토대로 복원한다던 ‘수성동 계곡’에 엉뚱하게도 축대를 쌓아올리고 있는 현장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육아 환경에 대한 고민이 막 시작되던 때에는 마침 동네의 어린이집 중 한 곳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에 도움이 되고자 머리를 맞댔다. 과정에서 서울시의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가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채 얼마나 졸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동네 골목을 청소하러 다니고, 동네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구경거리로 좋은 동네가 아니라 다양한 삶과 시간의 향기가 스민 채 역사와 삶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동네 골목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주제를 접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피부에 와 닿던 삶의 문제가 하나하나 마치 나의 문제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경험은 동네 모임의 활동을 통해 회원들 사이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소문으로만 듣고 흘리던 일들, 동네를 지나면서 머릿속으로만 되뇌던 물음표로 끝났을 이야기들이 모임을 통해 이야기 나누어지고, 의견을 모아 행동으로 이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동네는 좀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결국, 동네가 살기 좋아진다는 것은 관에서 예산을 많이 투여하는 동네나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말끔히 지어 올린 동네가 아니라,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관심을 기울이며 서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진실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깨닫게 된 셈이다.


낡은 인식과 자세는 큰 장애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모임에 참여하는 주민의 수와 활동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휴일 저녁의 빈 사무실로는 공간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이나 주민단체를 대하는 구청의 관료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 등은 언젠가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로 남겨져 있다. 게다가 관에서는 북촌과 삼청동을 바라보는 서촌 주민들의 우려스러운 눈빛은 아랑곳없이 날로 관심이 집중되는 서촌에 대해 관광지 개발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며 새로운 것, 근사한 것으로 옛것을 대체하는 사업만 남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마다 사는 사람이 자유롭게 부르면 그만인 동네 이름을 굳이 ‘세종마을’이라 새로 지어 붙이고선 ‘서촌 금지령’까지 내리는가 하면,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어  ‘내자시장’  등으로 불려왔던  ‘금천교시장’이란 이름도 제 마음대로 ‘세종마을음식문화의 거리’라는 새 이름으로 바꿔 붙이고 있다. 주민들이 부르는 동네 이름을 지우려는 관의 행태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주민으로서 열심히 의견을 모아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경직된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행정이 결국 마을의 진화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동네란,  마을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불쑥 살고 있는 동네의 의미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2년 만에 돌아오는 임대차 계약 만료 때마다 고민에 빠지는 보통 사람들에게 동네는 집값과 통근 거리에 따라 정해지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 이사 갈 곳을 찾다 보면, 도시는 어느새 시간과 비용의 공식에 따라 모든 것이 정해지도록 프로그램된 거대한 기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부동산에 있어서 시장경제가 실현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한 곳에 정주하는 삶을 누릴 권리나 동네를 선택한 권리는 집값 혹은 보증금이라 이름 붙여진,  경제적 여유만큼만 주어지는 것이니 말하자면 가격표가 붙어 있는 권리인 셈이다.


도시를 떠도는 삶에서 동네를 고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동네를 가꾸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는 처지에서도 날로 높아가는 임대료는 또다시 언젠가 정 붙인 이 동네를 떠나야 하는 현실로 내게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세입자로서 일부러 동네에 정 붙이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다시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어쩌면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동네를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주의 권리를 매매의 대상이 아닌 기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고민해봐야 한다.


마치 유목민처럼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도시민들의 삶에서 ‘동네’는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도시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면 다시 ‘동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동네를 재발견하고 이야기하며 동네의 가치를 힘써 끌어올리지 않는 한, 시간이 돌아오면 땅에 박힌 뿌리를 스스로 뽑아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 끝없는 이주의 삶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하동 오거리에서 체부동 골목으로 접어들면 라파엘의 집 뒤편을 지나 길이 굽으며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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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부동 107번지 건물 전면 / _IMG_0422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잠시 멈춰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부터 사람이 살기 위해 지어진 집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사연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열린 문 안쪽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좁다란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방문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나타납니다.


쓰레기 배출에 대한 주의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다가구 주택임을 알 수 있지만, 문 간격으로 봐서는 쪽방촌을 연상케 합니다.


이런 건물은 흔하지는 않지만 잘 살펴보고 다니면 또 의외로 눈에 띠는 종류의 건물인데, 짐작에는 공장이거나 공원(工員)들을 위한 숙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몇 걸음 물러서서 보면 앞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제법 길쭉하게 자리잡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는데요. 짐작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처음부터 사람이 거주 할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 이렇게 길쭉한 형태에 실내는 어두침침하게 지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밖으로 나있는 창도 그리 친철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동네의 곳곳을 안내하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이 건물에 대한 궁금증은 좀처럼 해결 할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옛 신문 기사가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네요.



都心(鍾路·中區)공장 모두 移轉 - 경향신문(1978.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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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1978년 3월 23일, 종로구와 중구 등 도심지역의 공장을 1980년까지 모두 변두리나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침을 확정하여 발표했습니다. 이 때에 이전 명령을 받은 업소 중에는 '태화두부 공장'과 '태성두부'라는 곳이 있는데 체부동 107번지와 통의동 118번지에 각각 소재했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도심 인구 과밀 해소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영세한 공장들을 지방으로 옮기면 직원들의 통근만 불편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직원 통근 문제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가 인접할수록 편리한 생필품의 경우에는 '직주근접(職住近接)의 원칙'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비추어도 당시 서울시가 밝힌 공장 이전의 이유가 쉽게 납득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 건물을 보면 공장이 이전되고 나서 직원들은 멀리 떠났을 지는 몰라도 작은 방들이 줄지어 들어서 오히려 도심 인구는 늘어나는 셈이 된 듯 합니다.


'태화두부 공장'과 달리 '태성두부'가 자리하던 통의동 118번지는 포털 지도서비스에서 지번이 나타나지 않는데, 인근 번지를 보아서는 옛 '커피즐겨찾기' 근처로 1978년 6월 자하문로 확장 공사가 착공되면서 철거되고 지금은 길 위에 어디 쯤으로 남게 된 듯 합니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도 골목 어귀에는 두부공장이 있었는데, 뚝딱거리던 소리와 펄펄나던 김이 무척이나 활력있어 보였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때 그 두부공장도 체부동 107번지 건물과 닮았던 듯 하네요.


혹시 지금도 주거지 가운데에 남아서 두부를 만들고 있는 두부공장이 있을까요? 동네 슈퍼를 가더라도 브랜드 로고가 선명한 두부들 사이에 고군분투하는 전국구 두부 브랜드들 밖에 볼 수 없는 지금에, 동네 두부공장과 저녁시간이면 딸랑대던 두부 아저씨 생각이 다시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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