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통령선거 개표부정의혹을 추적했다고 하는 영화 더플랜」 포스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더플랜」이라는 제목이 자주 눈에 띱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박근혜 당선)의 개표부정 의혹을 추적한 영화라고 합니다. 제작은 딴지일보의 김어준 씨가 맡았다고 합니다. 개표부정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일인시위는 거의 상설적이었습니다.


지난 2014년 6월 4일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에 처음으로 선거 투.개표 참관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개표부정 의혹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때의 기억이 자연히 떠오릅니다. 다만, 영화가 어떠한 근거를 제시하고 어떠한 내용을 사실로 확인하든 무관하게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고 지속될 수 있는 현장의 문제들이 제게는 더 흥미롭습니다.




개표소에서 '투표함 등 투표관계 서류 인계서'를 작성하고 확인하는 모습 / CC 김한울



참관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바는 참관인들 대부분이 참관인의 역할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경우가 희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개표참관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었습니다. 투표참관인은 대부분 참관에 대한 수당 이야기를 나눌 뿐, 정작 투표 현장을 어떻게 참관하고 어떠한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참관을 여러번 해 보았다는 다른 참관인은 투표소에서 투표 진행 절차를 두루 살펴보는 제게 역성을 내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눈으로만 봐야 하는데 돌아다닌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투표 참관은 투표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투표자의 본인 확인과 투표용지 배부, 기표된 용지의 투입 등의 과정을 모두 이동하며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투표소 참관의 효과를 어디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요.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종로 개표소의 투표지분류기와 운영프로그램 화면 / CC 김한울



실제로 배부된 투표용지의 수와 남아있는 투표용지의 수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만,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사후 예방책 역시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눈으로만 보고 있었다면 이러한 사실 조차 알지 못한 채 수당만 받고 끝나는 단기 고액알바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투표소에는 선관위 직원과 참관인, 투표를 위해 입장한 유권자 외에는 출입할 수 없음에도 투표 참관을 했던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국립서울농학교 강당)에는 이름 없는 명찰을 목에 걸고 대통령 경호실 직원들이 배석하기도 했습니다. 투표소에 출입할 수 없음을 고지하고 경호는 투표소 밖에서 하라고 일러주어야 그제서야 움직이더군요.


참관인이 오히려 투표자와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 받고 아직 투표하지 않은 사람을 확인하는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기도 합니다. 유권자가 참관인과 신체접촉을 하는 일도 이유를 떠나 원칙적으로는 해서는 안되는 행위입니다. 대통령과 참관인의 악수 역시, 엄격히는 불법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온 전례에 따라 특별히 문제하지 않는 정도로 합의된 정로도 설명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 후 참관인에 악수를 청하는 유권자 / 사진=연합뉴스



개표소에는 보다 많은 참관인들이 참여합니다. 유권자가 본인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 후 나가는 투표소에 비해 개표소에서는 보는 눈이 더 많아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개표 참관은 참관인 숫자에 비례한 더 큰 효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정상적인 개표 절차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은 오로지 개개인의 눈썰미나 눈치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몇 차례 참관의 경험이 있는 참관인들은 중요한 목에서 체크하지만 대부분은 뭘 어떻게 확인해야 할 지 분명하지 않아 눈에 보이는 대로 확인하는 정도였습니다. 몇몇 경험있는 참관인은 처음 참관하는 참관인들에게 중요한 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체계적으로 확인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참관인이 들어가 있다는 정도만 해도 효과가 없지는 않습니다. 보는 눈이 있으면 그 앞에서 뻔뻔하게 부정을 저지르지는 못할테니까요.



개표소에 도착한 투표함. 옆면 봉인에는 여러명의 간인을 찍어 봉인을 확인하고 있지만 투표구 봉인에는 한 명의 사인만 있어 봉인 절차의 일관성이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의 여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 / CC 김한울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참관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부정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부정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확신'을 주는 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개표 업무의 속도와 수월성을 중심으로 개표가 이루어지다 보니, 참관인에 충분한 설명이나 해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관인의 입장에서 당연히도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곳곳이 구멍 투성이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개표하기 바쁜 공무원들이 참관인들의 문제제기를 귀찮아하는 순간에는 이러한 의심은 겉잡을 수 없이 부풀어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개표부정에 대해 현실적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2014년 동시지방선거 개표소를 참관하며 각 공정별 진행과 오류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나름 중요한 목을 찾아다니며 샘플링하여 숫자와 분포를 크로스체크해보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개표부정이 일어나기는, 적어도 개표소에서 참관하는 이내에서 만큼은 쉽지 않다는 판단에 이른 것입니다.


사전투표함이 개함되자 개표원들이 개표를 위해 봉투를 테이블 위로 골고루 나누고 있다 / CC 김한울



하지만 '개표부정이 있을 수 없다'는 사회적인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메워야 하는 구멍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실제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느냐의 문제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 한 점 오류나 부정 없이 개표와 집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그 공정함이 공인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표현장에서 모든 절차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마지막 전산입력의 순간 이후에도 부정은 절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개표부정의 이른바 '음모론'을 믿는 이들에게까지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였습니다.



사전 투표 봉투에서 투표지와 함께 나온 메모지 / CC 김한울



저는 IT 개발자 출신입니다. 능력있는 개발자였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개발자로서 프로세스 설계와 그 안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은 실무를 통해서 충분히 무겁게 알고 있고, 그러한 기본을 갖추기 위해 보고 판단하는 눈은 경험을 통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킹(크래킹)은 기술적 영역에서 사회문화적 영역까지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류와 부정의 가능성이 '0'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소화 하는 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한 안에서 새로운 오류와 부정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차단함으로써 컴퓨터 해킹의 역사는 보다 안전한 기술적 기반을 토대로 만들어 왔습니다.




개표 및 분류 집계 후 검표를 기다리고 있는 투표지 묶음 바구니 / CC 김한울



개표부정에 대한 의혹은 실제 개표부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상당한 의심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의해서 발생한다기 보다는, 투개표 절차 자체가 충분히 밀도 있게 신뢰를 쌓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못함에 따라 헛점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탓에 제기될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 의혹의 사실여부 보다 일상적으로 부정적인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이 더 강조되어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개표부정 문제에 대한 제기는 끝을 알 수 없는 '음모론'이 아니라 공적 절차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를 단단히 쌓아나가기 위한 대안 모색 차원에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투표지분류기를 통과한 투표지 중 잘못 구분된 투표지'가 기록된 개표상황표 / CC 김한울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신뢰를 구축하는 일을 누가 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우리는 늘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선은 비현실적이니 늘 차악이라도 만족해야 한다는 대한민국의 선거룰이 결국 이러한 난맥상을 고착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곁가지로 뻗칩니다.


예전에 비해 현격하게 지역 구도가 무너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며 그 옛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포스트 삼김'의 시대가 결국 박정희 시대로의 귀환 이후에야 현실로 도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원튼 원찮든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길목에 서있습니다. 부디 새로운 시대에 낡은 관념이나 낡은 체념에 발목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젊음 조차 낡아버린 이 시대에 이러한 기대는 망상인가 싶은 생각이 시시때때로 들기도 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버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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