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새마을'을 직역한 영문 작명이 포털 지도서비스 위에 여기저기 무수하다. 마음먹고 세어봤더니 서울시내에만 뉴타운이 26개다. 뉴타운에 딸려있는 균촉지구가 9개, 그 외의 개발지구가 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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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의 씨앗을 곳곳에 뿌려놓고 청와대로 들어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흔적이자 그를 이어받은 오세훈 현 서울시장의 성과다. 그 가운데 좌절되고 백지화 된 계획들이 몇몇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니 서울은 새마을운동에 이어 뉴타운운동 중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한옥선언」

2008년 서울시는 2000년 이후의 한옥에 관련 정책의 성과를 기반으로 「서울 한옥선언」을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노라면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한옥 등을 언급하며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듯도 하지만, 그 맥락을 살펴보면 서울시의 한옥선언이 가지는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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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자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 아파트만 즐비한 서울의 풍경이 단조롭다.
  • 디자인 서울에 맞는 풍경이 필요하다.
  • 외국인들이 한옥을 좋아한다.
  •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진다.
  • 기존 한옥이 불편해서 보급이 어려우니 현대화 하자.

맥락적으로 보면 두 가지 정도가 주요하다.

  • 디자인 서울
  • 관광자원으로써의 한옥

보기에 그럴듯 한 풍경을 만들어서 관광객을 끌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 등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한옥들은 외관에 대한 내용 외의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뉴타운과 「서울 한옥선언」은 '새마을'에서 만난다. 새마을 운동은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지붕으로 갈아치웠고, 담장을 블럭 담장으로 바꿨다. 이유는 미관이었고 산업화 시기에 걸맞지 않은 낡고 남루한 옛 모습을 지우려는 노력이었다.

초가집은 아파트로, 슬레이트 지붕은 한옥으로 바뀌었다. 명목상 다양한 주거가 언급될 뿐, '외국인 보시기 좋았더라'로 귀결되는 것은 매 한가지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며 '한국인'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한국이 이렇게 현대화 된 줄 몰랐다'는 외국인의 감탄사였다면, 이제는 한옥 예찬이 그 자리를 바꾸어 넘겨받았다. 자기 시선을 가지고 스스로를 살피지 못하고 늘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검열하는 이 낡디낡은 반복은 판에 박힌 연속극 보다 봐주기 힘들다.

지난 7월 19일, 서울시는 은평뉴타운에 100동 규모의 '은평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지금 관련된 기사들이 속속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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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점은 관광이다.

결과적으로 한옥은 장식으로 남는다. 거창한 외관으로 으리으리하게 서있는 웨딩홀이나 대형교회 건물 처럼 모양새 꾸미기 위한 껍데기가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야말로 거대한 테마파크 조성계획이라고 이름 붙일 만 하다.

당연하게도 여기에 삶과 도시공동체가 끼어들 틈은 없다. 지금까지 아파트가 공급되어왔던 것 처럼, 주민조합을 결성해서 재건축을 추진해왔던 것 처럼 아파트 대신 한옥이 지어질 뿐 도시에 대한 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의 의지와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검열하는 얄팍한 자존만 생명을 이어간다.

속 알맹이 없이 겉 껍데기만 살아남는 한옥은 디자인을 '예쁘게 꾸미기'로 알고 있는 서울시의 중대한 오해의 연장으로, 주거와 미관을 건물과 외관으로만 이해하는 몰상식에 다름 아니다. 새마을은 뉴타운으로 직역되어 새한옥을 부르고 그것은 기존 재개발과 맞서는 듯 보여도 여전히 재개발의 논리와 마주닿은 채 새로운 모양새의 재개발로 거듭나고 있을 뿐이다.

서울시에서 간판 개선작업을 진행한 과정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기존의 낡은 간판이 새롭고 깔끔한 간판으로 교체되기 시작하니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어느새 서울시의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똑같은 모양의 간판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새로 달기 시작하던 간판이나 나중에 서울을 뒤덮은 간판이나 물리적으로는 다를 바 없었겠지만, 맥락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미 그 '디자인'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얄팍하게 그럴듯하고, 또한 얼마나 근본적으로 질환적인지 우리는 간판을 보고 알고 있다. 초가지붕 개량 사업을 하던 새마을 운동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옥'이 아니라, 600년 고도(古都) 서울을 지금까지 바라보고 개입해왔던 방식에 대한 반성이고, 그 가운데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소환이다. 편리한 생활만을 바라보다가 잃어버린 이웃과 골목을, 동네를 되찾는 일이어야 한다. 고 그것은 결국 개개의 인생이 삶으로써가 아니라 거대한 도시의 분업적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가슴서늘한 발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건축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도시계획에 대한 이야기지만 도시계획에만 국한 된 이야기도 아니며,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다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디자인과 한옥이 결국 새마을 운동과 재개발의 조금 세련된 수사를 포함한 재판에 불과하다면, 대도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 '새마을'이 '뉴타운'이 되어 돌아오듯, '아파트'가 '한옥'이 되어 도시를 좀먹는 미래는 빠르게 현실로 닥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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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IMG_840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요즘 나는 30년이 넘게 살아온 이 도시를 재발견하고 있다. 이 도시는 다소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또한 더 크게 보편적이다.

이 거대한 도시를 디자인이라는 한 가지 포장지로 싸버리려는 힘은 얼마나 무시막지한가. '종 다양성'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가치와 힘이라는 것을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스스로 깨닫고 알고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깊고 넓은 생태를 이루며 숨을 쉰다. 내가 보아온 도시가 그다지 많지 않음에도 이 도시가 품고 있는 그 폭과 깊이는 다른 어떤 도시에 비하더라도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인간은 물론 군집생활을 하는 지구상에 있는 인간 외의 종들이 건설한 수많은 도시들을 통틀어 보더라도.

도시는 늪이고 정글이다. 이 곳에 우주식민지 건설에서나 어울릴 콘크리트 더미를 쏟아부을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 생명에 대한 모욕이다. 우린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스스로에 대한 모욕을 헛된 꿈 앞에 눈 감고 귀 닫은 채로 참아왔나. 도시의 삶은 도시와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 도시를 물질로 치부하고 삶을 비물질로 분화시켜서 둘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늪과 정글을 밀어버리고 그 곳에 살던 생명들을 존중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 수많던 철거의 현장이 지나가고 찾아오던 허무함. 처음의 승리라고 축제를 벌이던 그 두리반 건물과 한옥이 합의의 뒤편에서 힘없이 쓰러져 건축폐기물로 쌓인 광경을 보는 순간에 가슴에 닿던 알 수 없는 소리들. 그것이 진정 도시의 비명이다. 삶의 신음이다.

우리는 도시를 쓰다듬으며 도시에 깃든 수많은 삶과 죽음을 위로하고 존엄을 되살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것이 도시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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