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4년 3월 14일, 노동당 서울시당 [칼럼]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eoul.laborparty.kr/258


몇몇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촌에서 세입자로 살며 용감하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제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미래가 닥쳐온 것이죠. 끝끝내 전세를 놓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전세 보증금을 20%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거든요. 3년 전, 누하동 한옥에 살 때 이 동네 전세 보증금이 최소한 매년 1,000만원씩 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적중한 셈입니다. 아니, 사실은 그 보다 더 많이 오르고 있으니 좀 느슨한 예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 당시 제가 살던 집의 전세는 평균 수준이었는데 지금 저는 서촌에서 가장 싼 전세집이나 마찬가지인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예견된 미래라고 하는 이유는 이미 그 조짐이 오래 전 부터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최소 십수년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죄다 물러나고 이제 수성동 계곡과 박노수 미술관이 있는 옥인길에는 자리 잡은 지 2년 이상 된 가게를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박노수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주변 땅값이 세 배나 뛰었다며 싱글벙글 하시는 종로구청장님의 연설을 우연히 듣게 됐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탁소는 멸종위기에 몰렸고,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몰려다니던 분식집들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업종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에도 세입자를 내보내고 건물주인이나 그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 하고요. 구멍가게가 사라지더니 슈퍼마켓도 통인시장 주변 외에는 죄다 없어지려나봅니다. 서촌에 사는 사는 사람의 생활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고 감수해야 하는 불편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사직단 복원 때문에 시립어린이도서관을 철거한다는 이야기까지 돌면서 서촌의 미래는 사람사는 동네가 아니라 관광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됩니다. 한 두 해 안에 쫓겨나는 재개발 철거민은 아니어도 10년 20년 두고 언젠가는 동네를 떠나야 할 사람들로 정해진 서촌 철거민 말입니다.


가게들이 이렇게 변하는데 집들도 마찬가지지요. 서촌이 미우나 고우나 정들어 살던 분들 조차 서촌을 어쩔 수 없이 등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테고, 그 중에는 저와 저의 가족도 포함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럴 땐 세입자란 정말 항상 추방당하며 살고 있는 존재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동네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해 봤자 집주인 전화 한 통이면 동네 분들과 작별인사하고 다른 동네로 짐을 싸야 하는 운명이니, 동네에 정붙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집없는 설움이라 하는 거겠지만, 집 가진 자가 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권리금 폭탄 돌리기라고 까지 얘기되는 가게 월세와 권리금 인상폭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입니다. 1~2년 전에 들어온 가게들이 장사에서는 밑지고 권리금으로 그 손해를 메꾼후 가게 주인 연봉 쯤 챙겨 나가는 게 성공적인 사례가 될 지경인 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달라는 권리금과 월세 주고 들어온 상인들이 오래 장사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촌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탓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옛 풍경, 오래된 골목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왔다면서 잠시 앉아서 쉴 곳, 산책으로 시장기 도는 배를 채우는 곳은 모던한 인테리어로 깨끗하게 정리된 곳만 찾는 모습은 종종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덕분에 월세는 오르는데 오래된 가게는 상대적으로 장사가 안돼서 가게를 접을 수 밖에 없게 되고 동네 풍경은 빠르게 바뀌어나갑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리 알고 그리 하시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계실까요. 앞서서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게으름을 탓할 일이지요.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가게든 집이든 제 발등에 불도 떨어지고 나니 뭔가 공론화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의견이라도 들으려, 최소한 이런 일이 아무 이야기 없이 지나쳐지고 만다면 더 큰 설움이 더 많은 분들께 더 빨리 닥쳐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글을 적게 됐습니다.


각자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셔도 좋고, 문제점에 대한 나름을 생각을 제시하셔도 좋습니다. 좀 더 나아가 대안이나 대책을 말씀해 주실 수도 있고, 어쨌든 무슨 이야기든 좋습니다. 서촌 거주자가 아닌 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적어주시는 것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습니다.



김한울 (노동당 종로중구당협 사무국장,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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